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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郜鼎]~고정[鼓庭~고정[考定]~고정[姑停]


고정[郜鼎]  고국(郜國)에서 만든 솥이다. 고국(郜國)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성무현(城武縣)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환공(桓公) 2년에 “여름 4월에 고(郜) 땅의 큰 솥을 송(宋)나라에서 취하여 무신일(戊申日)에 태묘(太廟)에 바쳤다.[夏四月 取郜大鼎于宋 戊申納太廟]”는 기록이 있다.

고정[郜鼎]  고정(郜鼎)은 고(郜)나라에서 만든 솥을 가리킨다. 춘추 시대 송(宋)나라의 태재(太宰) 독(督)이 상공(殤公)을 죽이고 정(鄭)나라에서 풍(豐)을 맞아다가 옹립하였는데, 주위에 있는 나라들이 이를 규탄할까 두려워하여 먼저 노(魯)나라 환공(桓公)에게 고정을 뇌물로 주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환공(桓公) 2년 경문에 “여름 4월에 송나라에서 고대정(郜大鼎)을 가져 와서 무신일에 태묘(太廟)에 들여놓았다.[夏四月 取郜大鼎于宋 戊申納于太廟]”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전(傳)에 “송나라가 환공에게 정(鼎)을 뇌물로 준 것이다. 태묘는 주공의 사당이다. 당초에 송나라의 반란을 평정하고자 하였다가 뇌물을 받는 것으로 일을 마쳤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무신은 5월 10일이다.[宋以鼎賂公 大廟 周公廟也 始欲平宋之亂 終於受賂 故備書之 戊申 五月十日]”라고 하였다.

고정[鼓庭]  고려 태조가 천안에 왕자성(王字城)을 쌓고 10만의 군사를 주둔시켜 마침내 견훤(甄萱)을 항복시켰는데, 바로 그 진영(陣營)을 둔 곳이 고정이라고 한다.

고정[高情]  높고 귀한 품위가 있는 마음을 이른다.

고정[古井]  마음이 마치 물 없는 우물에 파도가 일지 않는 것처럼 조용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고정[考定]  생각하여 정함을 이른다.

고정[考亭]  고정은 복건성(福建省) 건양(建陽) 서남에 있는 정자이다. 오대(五代) 남당(南唐) 때 황자릉(黃子稜)이 이곳에 정자를 지어 죽은 아버지의 무덤을 멀리 바라보며 ‘망고정(望考亭)’이라 이름하고 ‘고정’이라고 간칭(簡稱)하였다. 뒤에 송나라 주희(朱熹)가 만년에 이곳에 거처하며 창주정사(滄洲精舍)를 지었는데, 이종(理宗)이 ‘고정서원(考亭書院)’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여 ‘고정’이 주희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고정[考亭]  고정은 지금의 복건성(福建省) 건양(建陽) 서남쪽에 있는 지역이다. 오대(五代) 남당(南唐) 때 황자릉(黃子稜)이 정자를 건축하고 아버지 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해서 망고정(望考亭)이라 칭하다가 줄여 ‘고정’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것이 지명이 된 것이다. 주희(朱熹)가 만년에 이곳에 거처할 때 아버지 주송(朱松)이 이곳에 터 잡으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생각하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집을 지은 다음 죽림정사(竹林精舍)라 편액(扁額)하고 그곳에서 학문을 강론하다가 뒤에 창주정사(滄洲精舍)로 고쳤다. 이때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으므로 세상에서는 그들을 일러 고정학파(考亭學派)라고 하였다. 그 뒤에 남송(南宋)의 이종(理宗)이 주희를 높여 제사하기 위하여 1244년에 이 정사에 고정서원(考亭書院)이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사액(賜額)하였다. 이후로 ‘고정’은 주희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朱子大全 附錄 卷6 別本年譜, 卷7 書院>

고정[考亭]  송(宋)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호이다. 자는 원회(元晦) 혹은 중회(仲晦)이고, 호는 회암(晦庵) 또는 운곡산인(雲谷山人)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이통(李侗)의 제자이다. 성리철학을 확립시켜 유학사와 동아시아 사상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유학 경전에 대한 주석은 후세 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남강군(南康軍)의 지사(知事)로 있을 때 고을의 학문을 진흥시키기 위해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재정비하고 학규(學規)를 제정하였으며, 무이정사(武夷精舍)와 창주정사(滄洲精舍)를 세워 강학하면서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정치적으로는 당시의 권신(權臣) 한탁주(韓侂胄)의 간사함을 탄핵하면서 맞서다가 위학(僞學)을 하는 무리로 몰려 관작(官爵)을 삭탈(削奪)당하는 박해를 받았으며, 사후에야 회복이 되었다. 주요 저서에 주자대전(朱子大全), 시집전(詩集傳), 사서집주(四書集註), 근사록(近思錄),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등이 있다. 후세 사람들이 높여서 주자(朱子), 주 부자(朱夫子), 자양부자(紫陽夫子) 등으로 칭하기도 하였다. <宋史 卷429 道學列傳 朱熹>

고정[考亭]  주자(朱子)가 63세 6월에 창주정사(滄洲精舍)를 낙성하여 만년에 거처했던 곳이다. 주자의 부친인 위재(韋齋) 주송(朱松)이 생전에 이곳에 와 보고는 일기에 “고정의 계산(溪山)이 맑고 그윽하여 복거(卜居)할 만하다.”라고 적어 두었는데 주자가 그 뜻을 이어 건물을 짓고 이주한 것이다.

고정[姑停]  처분하는 동안 잠시 정지하다. 잠시 정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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