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림[顧亭林] 명말청초(明末淸初) 사람이다. 이름은 염무(炎武), 초명은 강(絳), 자는 영인(寧人)이다. 정림진(亭林鎭)에 살았으므로 정림(亭林)을 그의 호로 삼았다. 명나라가 망하자 청나라에 벼슬하지 않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학문에 종사하였다. 저서에는 일지록(日知錄)·구고록(求古錄)·금석문자기(金石文字記)·구문격론(救文格論) 등 수십 종이 있다.
고정약수용등사[古鼎躍水龍騰梭] 한유(韓愈)의 석고가(石鼓歌)에 “금줄과 쇠사슬이 서로 얽혀 힘차고, 옛 솥이 물에서 뛰듯, 용이 북으로 변해 날아가듯.[金繩鐵索鎖紐壯 古鼎躍水龍騰梭]”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석고문(石鼓文)의 자체(字體)가 변화무쌍하여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전하기를, 주 현왕 42년 구정(九鼎)이 사수(泗水)에 잠겼는데, 진시황이 당시 사람을 보내어 물속에 들어가 찾게 하였으나 구정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용등사(龍騰梭)’는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에 “간(侃)이 어릴 적, 뇌택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그물에 북[織梭]이 걸려들었다. 이를 벽에다 걸어 놓았는데, 얼마 후 천둥치며 비가 쏟아지자 그 북이 절로 용이 되어 날아갔다.[侃少時 漁于雷澤 網得一織梭 以掛于壁 有頃雷雨 自化爲龍而去]”라는 고사에 보인다.
고정자[高定子] 송(宋)나라 사람으로 자는 첨숙(瞻叔)이다. 벼슬은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첨서추밀원사(僉書樞密院事) 등을 역임하고, 만년에 은퇴하여 저술을 즐겼는데 그 서실(書室)을 체악당(棣萼堂)이라 이름하였다. <宋史 卷409 高定子> <宋元學案 卷80>
고정파념[古井波恬] 옛 우물은 적멸(寂滅)한 마음을 뜻하는 말로, 마음이 동요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는 뜻이다.
고정편[考亭篇] 주희의 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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