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苦竹] 대나무의 일종이다. 산병죽(傘柄竹)이라고도 한다. 높이가 4m까지 자라고 잎은 바늘 모양이다. 종이, 우산대, 붓 등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한다.
고죽[苦竹] 참대 혹은 왕대라고도 하는데, 중국이 원산지이다. 죽순의 맛이 쓰다고 해서 고죽이라 한다.
고죽[孤竹] 고죽은 고죽(觚竹)이라고도 하는데, 현재 하북성(河北省) 노룡현(盧龍縣)에서 열하성(熱河省) 조양현(朝陽縣) 일대에 있었다. 난하(灤河)에 청성묘(淸聖廟)라 불리는 백이와 숙제의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 사행(使行)을 가는 사람들이 들러보곤 하였다.
고죽[孤竹]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말한다. 처음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칠 적에는 무왕의 말고삐를 끌어당기며 간하였고, 무왕이 끝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차지한 뒤에는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은거하였다. 그때 “저 서산에 올라가서, 고사리를 캐도다.[登彼西山兮 采其薇矣]”라는 노래를 불렀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고죽[孤竹] 고죽은 고죽군(孤竹君)의 아들로, 청성(淸聖)이라 일컬어지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이른다. 백이와 숙제는 은(殷)나라가 망하자, 충절을 지켜 새 왕조인 주(周)나라에 벼슬하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죽었다.
고죽[孤竹] 은(殷) 나라 말기 중국의 열하(熱河) 일대에 있었던 나라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바로 이 나라 왕자였는데, 은 나라가 망하고 주(周) 나라가 천자국이 되자, 주 나라 녹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수양산(首陽山)에 은둔하였으므로 곧 이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고죽[孤竹] 특생(特生)의 죽(竹)을 말한다. 주례(周禮) 춘관(春官)에 “특별히 난 대[孤竹]로 피리를 만든다.”고 하였다.
고죽[孤竹] 해주(海州)의 옛 이름이다.
고죽고성[孤竹古城] 고죽은 옛 국명이다. 백이(伯夷), 숙제(叔齊)가 바로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었는데, 고죽군이 생전에 숙제를 후사로 삼으려 했으나, 고죽군의 임종에 미쳐서는 숙제가 형인 백이에게 왕위를 사양하였다. 백이가 아버지의 명령이라 하고 마침내 도망가 버리므로, 숙제 또한 왕위에 오르기를 싫어하여 도망가 버렸다. 마침내 고죽국 사람들이 가운데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였으며, 한편 백이, 숙제는 주나라에 의해 은나라가 망한 뒤로는 의리상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 은거하며 고사리만 캐 먹고 살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고죽국[孤竹國] 은(殷)나라 말기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나라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노룡현(盧龍縣)에 위치해 있는데, 아직도 그 산상에는 이제묘(夷齊廟)가 있고, 이제묘 앞에는 청풍대(淸風臺)가 있다고 한다.
고죽국[孤竹國] 은(殷)나라 말기 중국의 열하(熱河) 일대에 있었던 나라이다.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은 바로 백이와 숙제(叔齊)로, 은나라가 망하고 주(周)나라가 건국되자, 주나라 녹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수양산(首陽山)에 은둔하여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절개를 지키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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