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군[孤竹君] 고죽군은 상(商) 나라 묵태씨(墨胎氏)를 처음 봉했던 군호(君號)이다. 사기(史記) 백이숙제전(伯夷叔齊傳)에 “백이(伯夷)·숙제(叔齊)는 고죽군의 아들이다.”라고 하였다.
고죽기[孤竹飢] 백이(伯夷)·숙제(叔齊)를 말한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 임금의 두 아들로서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었으므로 하는 말이다.
고죽묘[孤竹廟] 은(殷) 나라 때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사당을 이른 말이다.
고죽사[孤竹祠] 난하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사당이다.
고죽성[孤竹城] 고죽성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은(殷)나라에서 봉(封)을 받은 나라인 고죽국(孤竹國)에 있는 성으로, 중국의 요서(遼西) 지방, 곧 난하(灤河)와 대릉하(大凌河) 사이에 있는 노룡현(盧龍縣)에 있던 성이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하는 것에 반대하고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지내다가 끝내는 아사(餓死)하였다. 후대에는 절개를 지킨 대표적인 사람으로 칭해진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고죽이제청[孤竹夷齊淸] 고죽은 외따로 난 큰 대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퉁소를 만든다. 백이(伯夷)·숙제(叔齊)는 은(殷) 나라 말엽의 청렴한 의사(義士)들로서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들이었으므로, 외따로 난 대를 빌어 고죽국의 백이·숙제를 말하였다. <史記 卷六十一 伯夷列傳>
고죽제형[孤竹弟兄] 형제간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가리킨다. 이들의 묘가 고죽성(孤竹城)에 있다.
고죽지관[孤竹之管] 주례(周禮) 춘관종백(春官宗伯) 대사악(大司樂)에 “고죽의 관(管)과 운화의 금슬과 운문의 춤을 동짓날이 되면 지상의 원구단에서 연주한다.[孤竹之管 雲和之琴瑟 雲門之舞 冬日至 於地上之圜丘奏之]”라는 말이 나온다.
고죽청풍[孤竹淸風] 고죽성은 옛날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봉해진 고죽국(孤竹國)이 있었던 곳이며, 맹자(孟子)가 이들을 평하여 성인(聖人) 가운데에서 청(淸)한 자라고 하였다. <孟子 萬章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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