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高遵] 후위(後魏) 수인(蓨人)으로 자는 세례(世禮)요, 문사(文史)를 섭렵하여 자못 필찰(筆札)에 공(工)했으며 제주자사(濟州刺史)에 올랐다.
고중[高重] 속임수를 써서 농간을 부리다.
고중[高中] 화살이 보기좋게 명중하였다는 뜻에서 우등의 성적으로 합격하는 것을 말한다.
고중진(高仲振] 금사(金史) 권127 은일(隱逸)에 “고중진의 자는 정지(正之)이며, 요동(遼東) 사람이다. 그 형이 개봉진(開封鎮)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고중진이 그에 의지해서 살았다. 얼마 있다가 가업을 형에게 부탁하고 처자식을 이끌고 숭산(嵩山)으로 들어갔다. 많은 책들을 섭렵했는데 특히 주역(周易)과 황극경세(皇極經世)의 학문에 더욱 조예가 깊었다.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도를 즐기며 번화한 도시에는 들어가지 않으니, 산야에 사는 소인들도 그를 공경할 줄 알았다. 일찍이 그의 제자 장잠(張潛)·왕여매(王汝梅)와 함께 산골짜기로 들어가 사니 사람들이 훨훨 나는 신선 보듯이 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고중진이 일찍이 이인(異人)을 만나 양생술(養生術)을 가르쳤다.’고 하고, ‘일찍이 하루 종일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뼈마디에서 우두득 우두득 소리가 났다.’고 하며, 말하는 것이 모두 이 세상 밖의 일이었는데 그를 듣고 찾아가자 다시는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高仲振, 字正之, 遼東人. 其兄領開封鎮兵, 仲振依之以居, 既而以家業付其兄, 挈妻子入嵩山, 博極群書, 尤深易, 皇極經世學. 安貧自樂, 不入城市, 山野小人亦知敬之. 嘗與其弟子張潛, 王汝梅行山谷間, 人望之翩然如仙. 或曰 : 仲振嘗遇異人, 教以養生術. 嘗終日燕坐, 骨節戛戛有聲. 所談皆世外事, 有扣之者, 輒不復語云.]”는 내용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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