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허[姑虛] 액수가 우선 비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고헌[高軒] 고헌은 높은 사람이 타는 수레이다. 당(唐)의 이하(李賀)는 겨우 일곱 살에 문장에 능하다는 소문이 났다. 당시의 문장가였던 한유(韓愈)와 황보식(皇甫湜)이 믿지 않고 직접 찾아가 시를 짓게 하여 시험하였더니, 이하가 즉석에서 고헌과(高軒過)라는 시를 지어 귀빈이 찾아왔다는 뜻을 읊었다. <唐書 李賀傳>
고헌[高軒] 상대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고헌과[高軒過] 당(唐) 나라 이하(李賀)가 7세 때 지은 글의 제목이다. 뜻이 전(轉)하여 어린이가 지은 글을 말한다. 당서(唐書) 육예전(六藝傳)에 “이하가 7세 때에 벌써 글을 잘 짓는다 하여 한유(韓愈)·황보식(皇甫湜)이 믿지 않았는데, 한번은 그 집을 지나다가 시를 짓게 하니, 글을 짓고는 ‘고헌과’라 제목을 달자 두 사람이 크게 놀랐다.”라 하였다. 고헌과(高軒過)는 높은 수레가 들렀다는 말이다.
고헌과[高軒過]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7세 때에 지은 문장 이름이다. 이하가 7세에 문장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한유(韓愈)와 황보식(皇甫湜)이 그 집을 찾아가서 이하에게 시를 짓게 하자, 이하가 대번에 즉석에서 장편 시(長篇詩)를 지어 쓰고 스스로 제목을 고헌과라 명명하니, 한유와 황보식은 이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고헌과라 이름한 것은, 곧 귀인(貴人)의 행차가 내방(來訪)해 주었음을 의미한 것이다.
고헌과[高軒過] 이하(李賀)는 당나라 때의 시인인데, 자는 장길(長吉)이다. 특히 악부시(樂府詩)로써 이름이 드러났다. 7세의 어린 나이에 능히 시를 지었다. 한유(韓愈)와 황보식(皇甫湜)이 그의 집을 방문하여 시를 짓게 하자 이하가 붓을 들고 바로 지었는데, 그 시가 고헌과(高軒過)이다. 고헌과는 귀한 분의 수레가 방문하였음을 읊은 것이다. <古文眞寶前集 卷7 高軒過 注>
고헌지[顧憲之] 남제(南齊) 사람으로 자는 사사(士思)이다. 벼슬은 건강 영(建康令)·형양 내사(衡陽內史)·상서이부낭중(尙書吏部郞中)·예장태수(豫章太守) 등을 역임하고, 저서에 시부명찬(詩賦銘賛)·형양군기(衡陽郡記) 등이 있다. <南齊書 卷46 顧憲之> <梁書 卷52> <南史 卷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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