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황부천석[膏肓負泉石] 당나라 은사(隱士) 전유암(田遊巖)이 기산(箕山)에 들어가 사는데, 고종(高宗)이 친히 그 집에 찾아가니, 유암이 야복(野服)으로 나와 영접하였다. 고종이 “선생은 근일에 평안하신가.”라 하니, 대답하기를 “신(臣)은 연하고질(煙霞痼疾)이요, 천석고황(泉石膏肓)입니다.”라고 하였다.
고황유치평성재[高皇遺恥平城在] 한 고조(漢高祖)가 흉노(匈奴)를 토벌하러 평성(平城)에 갔다가 백등(白登)에서 7일 동안이나 포위되는 수모를 겪은 뒤 진평(陳平)의 계책으로 간신히 빠져 나왔던 고사가 있다. <漢書 高帝記>
고황이수[膏肓二竪] 낫기 어려운 병(病)을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0년 조에 “진(晉)나라 경공(景公)이 병이 심하여 진(秦)나라의 명의(名醫)를 청하였는데, 그가 오기 전에 경공의 꿈에 두 수자(豎子 수상한 남자)가 서로 말하기를, ‘내일 명의가 오면 우리를 처치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고(膏)의 밑과 황(肓)의 위로 들어가면 명의도 어찌 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이튿날 명의가 와서 진찰하고는, ‘병이 고황의 사이에 들어갔으니 치료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라고 보인다. 이후로 고황은 난치의 병을, 이수는 병마(病魔)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고황재천석[膏肓在泉石] 산수(山水)를 너무도 사랑하여, 마치 불치(不治)의 고질병처럼 되었다는 말이다.
고황제[高皇帝] 명(明)나라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을 가리킨다. 주원장의 자는 국서(國瑞), 연호는 홍무제(洪武帝),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시호는 고황제(高皇帝)이다.
고황지질[膏肓之疾] 본디 다스릴 수 없는 고질(痼疾)을 말한다. 좌전(左傳)에 진후(晉侯)가 병이 있어 이름난 의원을 청했더니, 의원은 “병이 벌써 고(膏)의 밑 황(肓)의 위에 들어갔으니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 하였다. 고(膏)는 심(心)의 밑이요, 황(肓)은 격(鬲)의 위이다.
고황지질[膏肓之疾] 치료할 수 없는 깊은 병을 말한다. 춘추 시대 진 경공(晉景公)이 병이 들어 진(秦)의 명의를 불렀다. 의사가 도착하기 전에 경공이 꿈을 꾸니, 두 아이놈이 말하기를 “내일 명의가 우리를 처치할 것인데, 우리가 고(膏)의 밑과 황(肓)의 위로 들어가면 명의라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이튿날 명의가 진찰하고는 병이 고황에 깊이 숨어 고칠 수가 없다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成公10年>
고황천석심녕속[膏肓泉石心寧俗] 산수(山水)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 정도에 지나쳐서 마치 불치(不治)의 고질과 같이 되면 마음이 속되지 않다는 말이다. 고황(膏肓)은 곧 심장과 격막 사이의 부분인데 이곳에 병이 들면 침이나 약으로 고칠 수 없다 한다. 좌전(左傳) 성공(成公) 10년에 “병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심장[膏]의 아래, 격막[肓] 위에 있으니 어찌할 수가 없다.”라 하였다.
고회[高懷] 고회는 고상한 회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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