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앵고비[谷鶯高飛] 꾀꼬리가 그윽한 골짜기에서 높은 나무로 옮아간다는 것은 출세를 뜻한다.
곡약[鵠鑰] 따오기 모양으로 만든 금문(禁門)의 열쇠이다. 북사(北史)에 “금문의 열쇠를 곡약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곡여구[曲如鉤] 당나라 낙빈왕(駱賓王)의 완초월(玩初月)이라는 오언절구 중 제3, 4구에 “거울처럼 비춰 준 둥근 보름달이, 어찌하여 갈고리처럼 굽어졌는지.[旣能明似鏡 何用曲如鉤]”라는 말이 나온다. <全唐詩 卷79>
곡역[曲逆] 곡역은 한 고조(漢高祖)의 공신(功臣)으로 곡역후(曲逆侯)에 봉해진 진평(陳平)을 가리키는데, 그가 젊었을 적에 남달리 집이 빈곤하였다.
곡역[曲逆] 지금의 하북성 완현(完縣) 동남에 있었던 한나라가 설치한 현이름이다.
곡역[曲逆] 지명(地名). 연(燕)나라 땅.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완현(完縣) 동남. 전국책(戰國策) 원주(原註)에 “당(唐)은 지금의 노로(盧奴) 북로현(北盧縣)이며, 곡역(曲逆)는 지금의 포음(蒲陰)으로, 당시 연(燕)나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취하도록 권(勸)한 것이다.”라 하였다.
곡역후[曲逆侯] 곡역후는 한 고조(漢高祖) 때의 공신(功臣)인 진평(陳平)의 봉호(封號)이다. 한 고조가 죽은 뒤에 여 태후(呂太后)가 여씨(呂氏) 일가의 세력을 키워 정사를 좌지우지하였는데, 진평이 이를 걱정하면서도 대항하기에는 힘이 부족하여 항상 집에서 쉴 때면 이를 깊이 근심하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재상과 장수가 협력해야 한다는 육가(陸賈)의 충고에 따라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주발(周勃)과 화해하고 협력하여 여씨 일가를 주륙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史記 卷97 酈生陸賈列傳>
곡역후[曲逆侯] 기원전 200년 한 고조가 한(韓)나라 왕 한신(韓信 회음후 한신과 동명이인)이 도망쳐 들어간 흉노(匈奴)를 치러 갔다가 백등대(白登臺)에서 흉노에게 포위당했을 때, 진평이 흉노의 선우(單于)인 묵돌[冒頓]의 부인 연지[閼氏]에게 “한왕(漢王 유방)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묵돌에게 미녀를 바치려고 한다.”라는 말을 흘려서 연지로 하여금 묵돌에게 포위를 풀도록 종용하게 만들어 성공하였다. 한 고조가 위기를 모면하고 돌아오다가 곡역현(曲逆縣)을 지나면서 고을의 번화함이 낙양(洛陽)에 비견된다고 평하고는 진평을 곡역후(曲逆侯)에 봉해 주었다. <資治通鑑 卷11 漢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