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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연[曲宴]~곡영[嚳韺]~곡영[谷永]


곡연[曲宴]  곡(曲)은 적다는 뜻으로, 임금이 내원(內苑)에서 신하들에게 간단히 베푼 잔치를 말한다.

곡연[曲宴]  굽이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면서 시를 읊고 노니는 잔치를 말한다. 곡수연(曲水宴). 곡수유상(曲水流觴).

곡연[曲宴]  예전에, 임금이 궁중에서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서 베푸는 작은 잔치를 이르던 말. 궁중에서 베푸는 사연(私宴)을 말한다.

곡영[嚳韺]  고대의 제왕인 제곡(帝嚳)의 음악으로 한서(漢書) 예악지(禮樂志)에 “전욱(顓頊)은 육경(六莖)을 지었고, 제곡(帝嚳)은 오영(五英)을 지었다.”고 하였다.

곡영[谷永]  곡영은 한대(漢代)의 경학자(經學者)로 일찍이 성제(成帝) 연간에 재이(災異)로 인하여 대책(對策)을 올려서 상제(上第)를 받기까지 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성제의 허 황후(許皇后)의 전총(專寵)이 재이를 불러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무고한 허 황후에 대해서는 극구 비판을 가했던 반면, 성제의 외척(外戚)으로 발호(跋扈)가 더없이 극성했던 왕봉(王鳳) 5형제 등 왕씨들에 대해서는 은밀히 스스로 의탁하고자 하는 뜻에서 그들에게 아첨하여 빌붙었으므로 중용(重用)되어 벼슬이 북지태수(北地太守), 대사농(大司農)에 이르렀다. <漢書 卷85 谷永傳>

곡영[谷永]  곡영(谷永)은 자는 자운(子雲), 서한(西漢) 장안(長安) 사람으로 유가의 경전에 해박하였고,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올랐다. 재이설(災異說)에 뛰어나 성제(成帝)의 신임을 받았는데, 당시에 실권을 쥐고 있던 임금의 외척 왕씨(王氏)들과 은밀히 결합하여 그들을 위해 활약하였다. 누차에 걸쳐 대책(對策)을 올렸는데, 성제(成帝)의 황음(荒淫)과 호색(好色)함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집권자인 대장군 왕봉(王鳳)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상소한 것인데, 이 소(疏)에는 은연중 임금의 잘못을 들추어 왕봉을 두둔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漢書 卷85 谷永傳>

곡영[谷永]  곡영은 자가 자운(子雲)이며, 서한(西漢) 장안(長安) 사람이다. 대사농(大司農)에 올랐으며, 직간(直諫)을 잘하였다. 한 성제(漢成帝)가 귀신과 방술(方術)을 지나치게 신봉하자, 곡영이 신괴(神怪)한 일에 미혹되지 말 것을 간언하면서 “진 시황(秦始皇)이 서복(徐福), 한종(韓終) 등을 시켜 많은 어린 남녀를 싣고 바다에 들어가 신선(神仙)을 구하게 하였는데, 그길로 도망하여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漢書 郊祀志>

곡영[谷永]  중국 한나라 장안(長安) 사람이다. 자는 자운(子雲), 본명은 병(竝)이다. 북지 태수(北地太守)·대사농(大司農)의 벼슬을 지냈고, 경씨역(京氏易)에 정통하였다. 곡영이 “천문 현상과 관련하여 경씨의 역에 정통하였으므로 재이에 대해서 설명을 잘하였는데, 전후에 걸쳐서 위에 상소하여 건의한 것이 40여 회에 이르렀다.[其於天官 京氏易最密 故善言災異 前後所上四十餘事]”라는 말이 한서(漢書) 권85 곡영전(谷永傳)에 나온다. 경씨의 역은 한나라 맹희(孟喜)의 문인 초연수(焦延壽)에게서 역(易)을 배운 경방(京房)이 창립한 금문(今文) 역학(易學)을 말한다. 또 곡영의 글에 대해서 “정성이 내면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에 그 글과 말이 깊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점이 있다.[精誠由中 故其文語 感動人深]”라고 평한 말이 후한(後漢)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권13 초기(超奇)에 나온다.

곡영[谷永]  한나라 성제(成帝) 때 사람이다. 자는 자운(子雲)이며, 본명은 병(竝)이다. 글씨와 문장에 능했고, 주역(周易)에 정통했다. 벼슬이 대사농(大司農) 에 이르렀다. 40여 차례의 상소가 모두 천자의 허물을 과감하게 지적했으나 권신(權臣)의 과실은 언급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당시의 권신인 왕봉(王鳳) 등 일파에게 아부함으로써 자신의 영달을 추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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