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저포물[曲筯哺物] 송(宋)나라 주밀(周密)의 계신잡지전집(癸辛雜識前集) 필묵(筆墨)에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먼저 기구가 좋아야 한다. 대개 보건대 글씨를 잘 쓴 선배들은 또한 이 점에 유의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원휘가 붓에 유의하지 않는 것은 마치 썩은 대나무로 배의 삿대를 쓰고, 삐뚤어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가장 맞는 비유이다.[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泛觀前輩善書者 亦莫不於此留意焉……元暉謂筆不可意者如朽竹篙舟曲筯哺物 此最善喩]”라고 하였다.
곡전[曲旃] 깃대 끝이 비스듬하게 굽은 깃발을 말한다. 고대 황제나 왕이 스승을 모시기 위해 사용했던 의장용 깃발로 이것을 장식으로 세워 둔 것은 제왕의 권위를 넘본 참람한 행위였다.
곡전[曲全] 자신의 지혜를 숨김으로써 몸을 온전히 보전한다는 뜻이다. 노자(老子) 제22장에 “굽히면 온전하다.[曲則全]”라고 하였다.
곡절난행[曲折難行] 착종(錯綜 사물 따위가 뒤섞여 엉김)하고 복잡(複雜)해서 시행하기 어려움을 이른다.
곡절방루도[曲折方屢渡] 시내가 구불구불 꺾여 흘러서 하나의 시내를 여러 번 건너게 된다는 뜻이다. 두보(杜甫)의 서지촌심치초당지야숙찬공토실(西枝村尋置草堂地夜宿贊公土室) 2수 중 첫째 수에 “시내 한 줄기 흐르는데, 구불구불 꺾여 누차 건너노라.[溪行一流水 曲折方屢渡]”라고 하였다.
곡정[鵠亭] 곡정은 곡분정(鵠奔亭)인데, 옛날 정자의 이름이다. 수신기(搜神記) 권16에 “구강(九江) 하창(何敞)이 교주자사(交州刺史)가 되어 부임하는 길에 창오(蒼梧) 고요(高要)에 이르러 곡분정에서 유숙하였다. 밤중에 꿈속에서 어떤 여자가 나타나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이름은 소아(蘇娥)이고, 광신(廣信) 사람이다. 이 정자에 왔다가 정장(亭長) 공수(龔壽)에게 살해되었다.’고 하였다. 하창이 공수를 잡아다 문초하니, 사실을 모두 자백하여 사형에 처하였다.”라고 하였다.
곡정[鵠正] 과녁의 한가운데에 있는 두 점(點)의 표적을 말하는데, 혁제(革製)의 과녁판 한가운데에 붙여 놓은 표적을 ‘곡(鵠)’이라 하고, 포제(布製)의 과녁판 한가운데에 그려 놓은 표적을 ‘정(正)’이라 한다.
곡제[曲堤] 북제(北齊) 송세량(宋世良)이 청하태수(淸河太守)로 부임했을 때, 고을 동남쪽의 곡제에 도적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송세량이 팔조(八條)의 법제(法制)를 시행하자 도적들이 다른 곳으로 모두 달아나니, 백성들이 “곡제가 험하다 한들 도적에게 무슨 이익이랴, 송공만 계시면 절로 자취를 감추는걸.[曲堤雖險賊何益 但有宋公自屛跡]”이라고 찬미하였다 한다. <北齊書 卷46 循吏列傳 宋世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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