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困] ‘곤’은 곤핍(困乏)하다는 말이다. 주역(周易)의 곤괘(困卦)는 ‘못 아래 물이 있는 상’인데, 이를 ‘연못에 물이 말라버린 것이 곤핍함이다.’라고 풀이하였다. 상(象)에 “못에 물이 없음이 곤이니, 군자가 본받아 명(命)을 지극히 하여 뜻을 이룬다.[澤无水困 君子以 致命遂志]”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정전(程傳)에서 “군자가 곤궁할 때를 당하여 방비하고 염려하는 도(道)를 다하였음에도 면할 수 없다면 이는 명(命)이다. 마땅히 명을 미루어 지극히 하여 뜻을 이루어야 한다. 명의 당연함을 알았다면 궁색(窮塞)과 화환(禍患)에 마음을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의(義)를 행할 뿐이다. 명을 알지 못하면 험난함을 두려워하고, 곤궁함에 기(氣)가 꺾여 지키는 바를 잃을 것이니, 어떻게 선(善)을 하려는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곤[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는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어 그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으며, 이 고기가 변화하여 붕(鵬)이라는 새가 되는데, 붕새의 등 넓이는 또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곤[鯤] 남아가 큰 포부를 펴는 것을 뜻한다. 곤어[鯤]는 북쪽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로서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인데, 그것이 붕새[鵬]로 화하여 남쪽 바다로 옮겨가는 데 있어서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나 올라갔다가 여섯 달을 가서야 쉰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莊子 逍遙遊>
곤[棍] 곤(棍)은 형구(刑具)의 한 가지로서 버드나무로 넓적하고 길게 만들어 도둑이나 군율(軍律)을 어긴 죄인의 볼기를 치는 데 쓴다. 대소와 경중에 따라 중곤(重棍)·대곤(大棍)·중곤(中棍)·소곤(小棍)·치도곤(治盜棍)의 구별이 있다.
곤[袞] 왕공(王公)의 례복(禮服)인 곤룡포(袞龍袍)이다. 우순(虞舜) 때의 곤룡포는 상의(上衣)에 일(日)·월(月)·성신(星辰)·산(山)·용(龍)·화충(華蟲 꿩)을 그리고, 하상(下裳)에 종이(宗彛 호랑이와 원숭이가 그려진 술그릇)·조(藻 마름)·화(火)·분미(粉米 白米)·보(黼)·불(黻)을 수놓은 12장(章)이었는데, 주(周)나라 때의 곤룡포는 일(日)·월(月)·성신(星辰)은 빼고, 상의(上衣)에 산(山)·용(龍)·화충(華蟲)·화(火)·종이(宗彛)를 그리고, 하상(下裳)에 조(藻)·분미(粉米)·보(黼)·불(黻)을 수놓았으니, 모두 9장(章)이다. 이 곤룡포는 왕(王)과 상공(上公)이 모두 함께 착용하나, 단 왕(王)의 곤룡포에는 어깨 부위에 그린 용의 그림이 한 마리는 올라가고 한 마리는 내려오는 그림인데 반해 상공의 곤룡포에는 올라가는 용(龍)은 없고 내려오는 용(龍)만이 있을 뿐이다.
곤[鯀] 신화전설 속의 인물. 중국 고대 하(夏) 나라 임금 우(禹)의 아버지로 사흉(四兇)의 하나이다. 요(堯) 임금 때에 큰 홍수가 져서 황하가 범람하자, 요 임금이 신하들에게 홍수를 다스릴 만한 인물을 추천하게 하자, 여러 신하들이 곤을 추천하였음. 요 임금은 ‘곤이 왕명을 거스리고 여러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한다.’ 하여 거절하였으나, 신하들이 ‘일단 시험삼아 써 보자.’고 하였으므로, 곤에게 임무를 맡겼는데, 9년이 되도록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書經 虞書 堯典>
곤[鯀] 우(禹)의 아버지로 요(堯)에 의해 숭백(崇伯)에 봉(封)해졌으나 치수(治水)에 공(功)이 없고 요의 명을 어기고 인류를 해치므로 순(舜)이 우산(羽山)에서 그를 죽였다.
곤[鯀] 우(禹)의 아버지로 숭백(崇伯)에 봉해졌으며 사흉(四凶) 중의 한 사람이다. 요(堯)임금 때 큰 홍수가 있어 사방이 물에 잠겼다. 그래서 요임금이 곤에게 물길을 다스리도록 명했으나 9년 동안 공적을 이루지 못하였고, 아들 우(禹)가 그 뒤를 이어서 황하의 치수(治水)를 이루었다 한다. 기자(箕子)가 “옛날에 곤이 홍수를 막다가 오행의 순서를 어지럽혀 놓았다.[在昔鯀陻洪水 汩陳其五行]”고 하였다. <書經 周書 洪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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