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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면불정[袞冕黻珽]~곤면지복[袞冕之服]~곤몽원실[困蒙遠實]


곤면[袞冕]  곤면은 천자 또는 상공(上公)의 예복인 곤룡포와 면류관을 말한다.

곤면불정[袞冕黻珽]  곤(袞)은 그림이 있는 옷이고, 면(冕)은 관(冠)이다. 불(黻)은 위필(韋韠)이니 무릎을 가리는 것이고, 정(珽)은 옥홀(玉笏)이니 관리(官吏)들의 지부(持簿 관리들이 간단한 기록을 위해 들고 다니던 판쪽) 같은 것이다.

곤면지복[袞冕之服]  고대(古代)에 제후왕(諸侯王)의 면복(冕服) 위에 아홉 가지의 도안(圖案)을 놓은 것을 면복(冕服) 구장(九章)이라 하는 바, 상의[衣]에는 용(龍)·산(山)·화충(華蟲)·화(火)·종이(宗彝 종묘의 제례에 쓰는 술그릇)를 그리고, 하의[裳]에는 조(藻)·분미(粉米)·보(黼)·불(黻)을 수놓는다.

곤명[昆明]  지금의 운남성(雲南省) 대리주(大理州) 일대에 살았던 이민족 이름이다. 운남성의 주도(州都)인 곤명(昆明)은 이 민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곤명공[昆明功]  곤명은 한(漢) 나라 때 서남쪽에 있었던 오랑캐로, 지금은 운남성(雲南省) 곤명현(昆明縣)에 있다. 무제는 장군 곽창(郭昌)을 시켜 삭방(朔方)에서 돌아와 곤명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공이 없었다. <史記 卷十百十一 衛將軍驃騎列傳>

곤명지[昆明池]  곤명지는 섬서성(陝西省) 장안현(長安縣) 서남쪽에 있는 연못으로, 한 무제(漢武帝)가, 인도(印度)로 통하려 하는 것을 방해하는 곤명이(昆明夷)를 치려고 이 못을 파서 수전(水戰)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둘레가 40리이고 넓이가 332경(頃)이다. 한 무제가 곤명지를 팔 적에 밑바닥에서 검은 재가 나와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어보았으나 동방삭도 몰랐다. 그 뒤에 서역(西域)의 중이 와서 보고는 “이것은 겁회(劫灰)로, 천지가 다 타고 남은 재이다.”라고 했다 한다. 겁회(劫灰)는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가 파멸할 때 일어난다고 하는 큰불의 재를 말한다.

곤명지[昆明池]  곤명지는 섬서성(陝西省) 장안현(長安縣) 서남에 있는 주위 40리의 큰 연못인데 한 무제가 곤오이(昆吾夷)를 치기 위하여 이 연못을 파고 수군(水軍)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史記 卷30 平準書>

곤명지[昆明池]  옛날 장안(長安)에 있던 연못 이름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만들어 수전(水戰)을 익히던 곳인데, 송(宋)나라 이후에 없어졌다. 섬서성 장안현(長安縣) 서쪽에 있었다. 곤지(昆池)라고도 한다.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 “元狩三年 發謫吏穿昆明池”라고 보이는데 그 주에, ‘臣瓚曰 西南夷傳 有越雋昆明國 有滇池 方三百里 漢使求身毒國 而爲昆明所閉 今欲伐之 故作昆明池象之 以習水戰 周圍四十里’라 하였다.

곤몽원실[困蒙遠實]  주역(周易) 몽괘(蒙卦) 육사(六四)에 “몽매함에 빠진 것이니, 부끄럽도다.[困蒙 吝]” 하고, 몽괘(蒙卦) 육사(六四) 상(象)에 “곤몽의 부끄러움은 홀로 강명(剛明)한 자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困蒙之吝 獨遠實也]”라고 하였다.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이 현자를 가까이하지 않아 몽매함을 계발할 길이 없어 부끄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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