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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쇄[裩曬]~곤수[袞繡]~곤수[閫帥]~곤수득죄[鯀雖得罪]


곤쇄[裩曬]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함(阮咸)은 본래 길 남쪽에 살고, 다른 완씨(阮氏)들은 길 북쪽에 살았던바, 북쪽에 살던 완씨들은 다 부유했고, 남쪽에 살던 완씨는 빈곤했는데, 한번은 7월 7일에 북쪽의 부유한 완씨들이 모두 좋은 비단옷들을 밖에 내다가 포쇄(曝曬)하자, 완함은 거친 베로 지은 쇠코잠방이[犢鼻褌]를 바지랑대 끝에 걸어 마당 가운데 내다가 포쇄하고 있으므로, 어떤 이가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세속을 면치 못한 것이니, 그저 구차할 뿐이다.[未能免俗 聊復爾耳]”라고 했다 한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阮咸>

곤수[袞繡]  곤수는 곤룡포(袞龍袍)를 지을 정도의 뛰어난 솜씨라는 뜻이다.

곤수[閫帥]  변방의 수비를 책임지는 장군으로, 조선조에서는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를 통틀어 칭하였다.

곤수[閫帥]  병사(兵使)·수사(水使) 등의 별칭이다.

곤수[閫帥]  예전에 대장을 임명할 때에 임금이 말하기를 “서울 성문 문지방[閫] 안은 내가 맡고 그 문지방 바깥은 장군이 맡으라.”고 하였다 하여, 대장을 곤수(閫帥)라 한다.

곤수득죄[鯀雖得罪]  곤(鯀)은 중국 고대 하(夏) 나라 임금 우(禹)의 아버지로 사흉(四兇)의 하나이다.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소철(蘇轍)의 하론(夏論)에 “곤(鯀)은 비록 죄를 지었으나 아버지이기 때문에 교(郊)에 제사를 지냈다.[鯀雖得罪 以父故 得祭於郊]”고 하였다.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에 의하면 “요(堯)가 곤(鯀)을 시켜 치수(治水)하게 하였는데 9년이 되어도 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순(舜)이 천자(天子)의 정사(政事)를 섭행(攝行)하자 곤(鯀)을 우산(羽山)에 가두어 죽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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