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양[昆陽]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엽현(葉縣)에 있었던 고을로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가 이곳에서 왕망(王莽)의 45만 대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876에 “지황(地皇) 4년에 사도(司徒) 왕심(王尋)과 사공(司空) 왕읍(王邑)이 곤양을 지키고 있었다. 광무(光武)가 남양(南陽)에서 군대를 일으켜 곤양에 이르러 공격할 때 크게 바람이 불고 우레가 쳐서 지붕의 기와가 모두 날아가고 비가 동이의 물을 붓듯이 쏟아져 치천(滍川)의 물이 넘쳐흘렀다. 왕심과 왕읍이 죽은 사람을 타고 건너가다가 왕심은 죽고 왕읍은 장안(長安)으로 돌아갔다가 왕망(王莽)이 패배하자 모두 전사하였다.”라고 하였다.
곤양[昆陽]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왕망(王莽)의 100만 대군을 격파했던 곳이다. 왕망의 군대가 곤양을 겹겹이 포위하자 군사들과 장수들이 모두 전의를 상실하였으나, 유수가 직접 나가서 적과 싸워 연속하여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를 보고 군사들이 모두 합세하여 대항해 왕망의 군대가 궤멸되었다. 이때 때맞추어 천둥과 큰바람이 일어 기와가 모두 날아가고 장대비가 퍼부어 치천(滍川)이 범람하니, 맹수들이 두려워서 벌벌 떨었고 수많은 적군이 빠져 죽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1 光武帝紀>
곤양성[昆陽城] 동한(東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왕망(王莽)의 군사를 무찌른 성이다.
곤양전상[昆陽戰象] 후한(後漢) 경시(更始) 원년에 왕망(王莽)의 군사가 곤양에서 왕풍(王風), 유수(劉秀) 등 후한의 군사와 싸울 적에 물소[犀] 코끼리[象] 호랑이들을 몰고 와서 싸움을 돕게 하였다. 비가 크게 오매 모진 짐승들이 벌벌 떨면서 흩어지고 왕망의 군사는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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