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거문자[公車文字] 상소문. 공거문자(公擧文字). 응시(應試)․응제(應製)․소장(疏章) 등의 시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공거부[公車府] 한 나라 때 인재를 선발하던 기관이다. 한 나라 때에는 국가에서 부르는 사람을 모두 공거(公車)로 보냈다.
공거설산경[公去雪山輕] 두보(杜甫)가 엄무(嚴武)를 애도한 시에 “공이 오시매 설산의 비중이 무거워졌고, 공이 떠나시매 설산의 비중이 가벼워졌네.[公來雪山重 公去雪山輕]”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6 八哀詩 3 贈左僕射鄭國公嚴公武>
공거심[孔距心] 제 나라의 평륙(平陸)이란 고을의 수령이었는데, 맹자가 “지금 남에게서 소와 양을 받아 대신해서 기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목장과 꼴을 구할 것이다. 목장과 꼴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소와 양을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인가, 아니면 또한 소와 양이 죽어 가는 것을 서서 볼 것인가?” 하고 질책하니 “이는 저 거심의 죄입니다.” 하고 뉘우쳤다고 한다. <孟子 公孫丑下>
공거의[貢擧議] 주자가 과거 시험에 시부(詩賦) 출제를 지양하고, 경(經)·자(子)·사(史)·시무(時務)로 나눠 시험을 보여야 한다고 올린 주의(奏議)이다. <宋史 卷156 選擧2>
공거의[貢擧議] 정식 명칭은 학교공거사의(學校貢擧私議)이다. 주자(朱子)가 당시의 학교 행정과 관리 선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스스로 개선안을 만들었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옛날 학교에서는 덕업(德業)과 도예(道藝)를 가르쳐서 현자(賢者)와 능자(能者)를 배출하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비록 향거(鄕擧)가 있기는 하지만 정원 수가 고르지 않고, 태학(太學)을 설치하기는 하였지만 덕행의 실제에 근본하지 않고 쓸데없는 빈말만 일삼기 때문에, 풍속이 날로 투박해지고 인재가 날로 쇠퇴한다. 이를 혁신하는 방법은 반드시 명도(明道) 선생이 희령(熙寧) 연간에 제창하신 의론처럼 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여러 주(州)의 정원 수를 고르게 하고, 덕행과(德行科)를 세우며, 사부(詞賦)를 혁파하고, 경(經)·사(史)·자(子)·시무(時務)를 익히는 연한(年限)을 나누어 학업을 고르게 하고, 또 도덕이 있는 사람을 뽑아 교도(敎導)를 전담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육이 위에서 밝아지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워져 선왕의 도가 다시 세상에 밝아지게 될 것이다. 이상이 그 대략인데, 이 글은 공식으로 나라에 올린 것이 아니고 주자가 사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朱子大全 卷69>
공거특징[公車特徵] 속한서(續漢書) 백관지(百官志)에서 “위위(衛尉)의 속관(屬官)으로 공거사마령(公車司馬令) 1인이 있었는데, 관질(官秩)은 육백 석이었고 궁궐 남쪽 궐문(闕門)을 맡으면서 이민(吏民)이 올리는 글, 사방에서 바치는 공물, 공거(公車)로 불러들여 출두하는 사람들을 담당하였다.”라 하였다. 특(特)은 혼자라는 뜻으로 혼자만 부름을 받았고, 당시에 함께한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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