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상반[功過相半] 공로와 허물이 서로 반반이라는 말이다. 공과상저(功過相抵).
공관[空館] 성균관 유생들이 불만이 있을 때 일제히 수업을 거부하고 명륜당(明倫堂)을 빠져 나와 동맹휴학을 하던 일을 말하는데, 권당(捲堂)이라고도 한다.
공관[空館] 성균관의 유생들이 불만 사항이 있을 때 이를 관철하기 위하여 일제히 관을 비우고 나와 버리는 일을 말한다. 권당(捲堂)이라고도 한다.
공관주후문[公寬柱後文] 황정견이 최공도(崔公度)를 보내는 시에 “백성들은 허리에 찬 칼을 팔 것이고 공은 법조문을 관대하게 하리라.[民賣腰間劍 公寬柱後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黃山谷詩集 卷八>
공광[孔光] 공광(孔光)은 전한(前漢)의 유자(儒者)로 공자의 14대손이다. 경학(經學)에 밝아 지위가 승상까지 이르렀다가 왕망이 전권(專權)한 뒤에 여러 번 사직했으나 허락되지 않아 결국 태사(太師)가 되었다가 비난 받았다.
공광[孔光] 한(漢) 나라 사람. 공광은 공자의 41대손으로 원제 때부터 공보(公輔)의 직임을 두루 거쳤다. 태사로 있을 때 영수목(靈壽木)으로 만든 지팡이인 영수장(靈壽杖)을 하사받았다. <漢書 卷81 孔光傳>
공광[孔光] 한(漢) 나라 사람이다. 사람됨이 공평무사하였고 조정의 일을 절대로 누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서(漢書) 공광전(孔光傳) 찬(贊)에는 “선비의 옷을 입고 선왕(先王)의 말을 전하였으니 그 도량은 좋지만, 녹위(祿位)만은 끝까지 보유하려 하였으므로 아첨한다는 기롱을 받았다.”라고 하였다.
공광온실[孔光溫室] 공광은 퇴궐하여 형제처자와 함께 집에 있을 적에도 조정에 관계된 일은 일체 말하지 않았는데, 누가 온실전 안에 있는 나무들의 종류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전연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만하였다는 고사이다. <漢書 卷八十一 孔光傳>
공교[工巧] 교장(巧匠), 곧 솜씨 좋은 장인(匠人)이다.
공교[公僑] 정자산(鄭子産). 그가 사명(使命)에 능했다. <左傳>
공교조수[工巧組繡] 사조(詞藻)가 화려하고 기교(技巧)가 뛰어난 작품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한부(漢賦)·영명체시가(永明體詩歌)·근체시(近體詩) 같은 것을 여기에 해당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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