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돈[供頓] 술을 내어 손님을 접대함. 또는 먹을 것과 물건을 대어 줌. 당서(唐書) 고기(高紀)에 “도중에 식사를 제공한 지역[所過供頓]은, 올해 세금의 반을 면해주도록 명하였다.”라고 하였고, 자치통감(資治通鑑) 190의 호삼성(胡三省) 주(注)에 “중돈(中頓)은 중도에 성이 있고 식량이 있어 머물러 밥 먹을 수 있음을 말한다. 식사를 제공해주는 곳을 돈(頓)이라 한다. 당인(唐人)들은 치돈(置頓)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고 하였다. 공돈(供頓)은 치돈(置頓)과 뜻이 비슷하다. 오늘날 밥 한 끼 먹는 것을 일컬어 ‘흘일돈반(吃一頓飯)’이라 하는데,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공돈로비[供頓勞費] 여행하고 잔치하는 데 드는 인력과 비용을 이른다. 공돈노비.
공동[崆峒] 공동산(崆峒山)은 계주(薊州)에 있는 산이고, 광성자廣城子)는 중국 상고 시대의 선인(仙人)이다. 광성자가 공동산의 석실(石室)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이 산으로 광성자를 찾아가 함께 노닐면서 수신법(修身法)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공동[崆峒] 산 이름인데,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평량시(平涼市) 서쪽에 있다. 산당사고(山堂肆考) 공동문도(崆峒問道)에 “광성자(廣成子)는 황제(黃帝) 헌원(軒轅)의 시대 사람으로 공동산(崆峒山) 석실(石室) 속에서 은거하였는데, 황제 헌원이 찾아가 지도(至道)의 요점을 물었다.”라고 하였는데, 공동산을 황제 헌원의 헌(軒) 자를 따서 헌만이라고도 한다.
공동[崆峒] 황제(黃帝)가 스승으로 섬겼다는 공동산(崆峒山)의 광성자(廣成子)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 전설상의 선인(仙人)인 광성자(廣成子)가 공동산(崆峒山)의 석실(石室)에 은거하였는데, 황제(黃帝)가 재위(在位) 19년 만에 그를 찾아가 도를 묻고 수도 끝에 지도(至道)의 정수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장자(莊子) 재유(在宥)에 나온다. 공동산은 공동산(空同山)이라고도 한다.
공동[崆峒] 서울을 말한다. 옛사람은 북극성이 하늘 중앙에 있고 북극의 아래는 공동(崆峒)이라고 여겼는데, 낙양(洛陽)은 땅 중앙에 위치하므로 낙양을 공동이라고 하였다. 중국의 낙양은 우리나라의 서울과 같다.
공동[崆峒] 공동은 공동자(崆峒子)의 준말로 명(明) 나라 시인 이몽양(李夢陽)의 호이다. 시(詩)와 고문(古文)으로 당시 십재자(十才子)로 일컬어졌다. 이몽양은 명(明)나라 효종(孝宗)~무종(武宗) 때의 문인으로 자는 헌길(獻吉)이다. 하경명(何景明)·서정경(徐禎卿) 등과 시문의 복고를 주창하여, ‘문(文)은 반드시 진한(秦漢)이라야 하며, 시(詩)는 반드시 성당(盛唐)을 따라야 한다.[文必秦漢, 詩必盛唐.]’라고 주장하였다. 진한의 고문과 두보(杜甫)의 시를 이상으로 하고 시의 격조를 중시하였다. 하경명(何景明)·서정경(徐禎卿) 등과 함께 ‘칠재자(七才子)’ 또는 ‘십재자(十才子)’로 불린다.
공동[公桐] 공동은 감숙(甘肅) 평량시(平涼市) 서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공동(空桐)은 공동(崆峒)으로도 표기한다.
공동[空同] 명(明)나라 이몽양(李夢陽)의 호이다. 자는 헌길(獻吉)이다. 문장은 진한(秦漢), 시는 성당(盛唐)을 주장하여 시문의 복고(復古)를 꾀하였다. 하경명(何景明)·서정경(徐禎卿) 등과 함께 ‘칠재자(七才子)’ 또는 ‘십재자(十才子)’로 일컬어졌다. 저서로는 공동자집(空同子集)이 있다.
공동[空同] 명(明)나라의 문학가(文學家)인 이몽양(李夢陽)의 호이다. 이몽양은 시문(詩文)에 능하여 명나라 십재자(十才子)의 으뜸이라 일컬어진다. 저서로는 이공동집(李空同集)이 있다.
공동[空同] 북두성 바로 밑에 있다는 산 이름인데, 황제(黃帝) 때의 신선 광성자(廣成子)가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공동[恐動] 위험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함. 공갈(恐喝)하다. 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며 을러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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