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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입직[共理立職]~공리지호[孔李之好]~공리통가[孔李通家]


공리입직[共理立職]  옛날의 임금은 수령 자리를 가리켜 함께 다스리는 직책[共理立職]이라고 하였다.

공리지설[功利之說]  공리(功利)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인데, 구체적으로는 부국강병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가(法家) 사상을 지칭한 것이다.

공리지호[孔李之好]  공융(孔融)은 후한(後漢)의 헌제(獻帝)때 북해상(北海相)을 지내고, 뒤에 조조(曹操)에게 피살되었다. 이응(李膺)은 후한의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명신으로, 영제 때 두무(竇武)와 함께 환관(宦官)을 숙청하려다가 도리어 피살되었다. 공융은 어려서부터 특이한 재주가 있었다. 나이 10세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가서 당시 고사(高士)로 이름난 하남 윤(河南尹) 이응(李膺)을 찾아가서 자신을 통가(通家 선조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의 자제라고 소개하였다. 그러자 이응이 묻기를 “그대의 조부가 나와 친구의 정이 있는가?” 하고 물으니, 공융은 “그렇습니다. 우리 선조 공자는 당신의 선조 이노군(李老君 노자老子)과 덕도 같고 의(義)도 비슷하여 서로 사우(師友)가 되었으니, 나 공 융과 당신은 누대 통가입니다.” 하여 좌중을 감탄시켰다. <後漢書 卷70 孔融傳> 이 일이 있은 뒤부터 두 집안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을 공리지호(孔李之好)라 일컬었다.

공리통가[孔李通家]  공융(孔融)과 이응(李膺)은 모두 후한(後漢) 말기의 명사이며, 통가(通家)는 여러 대 동안 한집안처럼 친하게 지냄을 이른다. 옛날 공자(孔子)는 노자(老子)를 찾아가 예(禮)를 물었는데, 노자는 성이 이씨(李氏)이다. 공융은 공자의 후손이며 이응 또한 노자의 후손이라 한다. 공융이 이응을 보고 “우리는 통가의 자제이다.” 하자, 이응이 그 이유를 물으니 공융은 대답하기를 “우리 선조인 공자가 그대의 선조인 노자와 친했기 때문이다.” 하였다.

공리현화[空裏玄花]  허공의 검은 꽃. 눈동자. 공리(空裏)는 허공을 이르고, 현화(玄花)는 검은 꽃으로 눈[目]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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