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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소추서[公門少推恕]~공문십철[孔門十哲]~공문왕망[孔門王莽]


공문소추서[公門少推恕]  공문은 관청을 가리킨다. 유종원(柳宗元)의 문적전유감(聞籍田有感)에 “공문에는 백성들의 마음을 미루어 용서함이 적어, 채찍과 회초리로 마음대로 때린다네. 부디 노력하여 조세(租稅)를 마련하라, 살갗은 참으로 아까운 것이라네.[公門少推恕 鞭扑恣狼藉 努力愼經營 肌膚眞可惜]”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공문십철[孔門十哲]  공자의 제자 가운데 10명의 학덕이 뛰어난 현인으로, 안회(顔回),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재아(宰我), 자공(子貢), 염유(冉有), 계로(季路), 자유(子游), 자하(子夏)를 가리킨다.

공문왕망[孔門王莽]  하씨어림(何氏語林) 권18에 “송나라 때에는 장주를 도가의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로 지목하고 왕통을 공문의 왕망으로 지목하였다.[宋世嘗目莊周爲道家之儀秦 王通孔門之王莽]”라는 기록이 있다.

공문왕망[孔門王莽]  왕망(王莽)은 한나라 효원황후(孝元皇后)의 생질로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권력을 잡았다. 애제(哀帝)가 즉위하자 물러났다가 애제가 죽은 뒤 다시 기용되어 평제(平帝)를 옹립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들여 조정의 정사를 전횡하였다. 이윽고 평제를 죽인 뒤 그의 어린 아들 영(嬰)을 세워 섭정을 하면서 스스로 가황제(假皇帝)라고 일컫다가 마침내 제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천자가 되어 국호를 신(新)이라 하였다. <漢書 卷99 王莽傳> 앞서 원시(元始) 5년에 평제가 병을 앓을 때 왕망은 금등책(金縢策)을 위조하여 궁전에 보관한 일이 있다. 이 위서가 전하지는 않지만 서경(書經) 금등(金縢)과 몹시 비슷할 것이라 추측되었다. 이 때문에 왕통이 태평책을 올리고 물러나 원경(元經)을 지었을 때, 당시 사람들이 기롱하여 ‘왕통은 공문의 왕망이다.[目王通孔門之王莽]’라고 한 일이 있다. <尙書古文疏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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