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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약마[公孫躍馬]~공손연[公孫衍]~공손오[公孫敖]


공손약마[公孫躍馬]  공손술(公孫述)은 전한(前漢) 말 왕망(王莽) 때에 군대를 일으켜 익주(益州) 성도를 점령하고 촉왕(蜀王)이 되었다가 다시 칭제(稱帝)하였는데,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촉도부(蜀都賦)에 “공손술은 말을 치달려 황제라고 일컬었고, 유종은 연에서 내려 스스로 왕이 되었다.[公孫躍馬而稱帝 劉宗下輦而自王]”라는 말이 나온다.

공손연[公孫淵]  공손연은 삼국 시대 요동태수로, 공손강(公孫康)의 아들이다. 위(魏)나라에서 관구검(毌邱儉)을 파견해 공손연에게 항복하기를 요구하자, 공손연은 이를 물리치고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칭하였다. 다음 해 위나라에서 다시 사마의(司馬懿)를 보내 요동을 공격해 공손연을 잡아 죽였다. 이로 인해 요동, 대방, 낙랑, 현도 네 군이 위나라의 판도로 들어갔다. <魏志 卷8>

공손연[公孫衍]  서수(犀首)를 가리킨다. 위(魏)나라 음진인(陰晉人). 일찍이 서수 땅의 관리를 지냈기 때문에 흔히 서수(犀首)라고 칭한다. 처음 진(秦)에서 벼슬하였으나 장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장의(張儀)가 죽은 후 진(秦)나라 재상이 되고 각국을 유세하여 오국(五國) 상인(相印)을 찼다. <史記 張儀列傳>

공손연[公孫衍]  위(魏)나라 사람이다. 공손연은 서수(犀首)라고도 한다. 진(秦)나라의 대량조(大良造)가 되어 소진(蘇秦)의 합종책을 깨뜨렸다. 나중에 위(魏)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어 제후들과 합종하여 장의(張儀)의 연횡책에 맞섰다.

공손오[公孫敖]  춘추 시대 노(魯) 나라의 종친으로, 중손오(仲孫敖) 혹은 목백(穆伯)이라고도 한다. 노 나라 대부 양중(襄仲)이 거(莒) 나라의 기씨(己氏)에게 장가들 예정이었는데, 마침 공손오가 거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는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간통을 한 뒤에 노 나라를 떠나 기씨에게 의탁하여 살다가 결국 귀국하고 싶은 소원을 풀지 못한 채 제(齊) 나라에서 죽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8년·14년·15년 조에 나온다.

공손오분거 종기씨야[公孫敖奔莒 從己氏也]  공손오(公孫敖)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종실(宗室)인 중손오(仲孫敖)이다. 노(魯)나라 대부(大夫) 양중(襄仲)이 거(莒)나라 기씨(己氏)에게 장가들었는데, 미처 그녀를 데려오지 못하였다. 공손오(公孫敖)가 국사(國事) 때문에 거(莒)나라에 사신을 가자, 양중(襄仲)은 그에게 기씨(己氏)를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공손오(公孫敖)는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그녀와 간통하였다. 뒤에 사람들의 비난을 받자, 공손오(公孫敖)는 그녀를 거(莒)나라로 송환(送還)하였으나 얼마 후 국가를 버리고 기씨(己氏)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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