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씨광삼[孔氏廣森] 공광삼(孔廣森)을 가리킨다. 산동(山東) 곡부(曲阜) 사람으로, 자는 중중(眾仲)이고 또 다른 자는 휘약(撝約)이다. 대진(戴震)의 제자이며 경학가(經學家)이자 고음운학가(古音韻學家)이다. 건륭(乾隆) 36년(1771)에 진사에 급제하고 검토(檢討)를 역임하였다. 대대례기보주(大戴禮記補注)·춘추공양통의(春秋公羊通義)·시성류(詩聲類)·의정당병려문(儀鄭堂駢儷文)·경학치언(經學卮言) 등을 편찬하였다.
공씨삼세출처[孔氏三世出妻] 공자의 부친인 숙량흘(叔梁紇)과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와 백어의 아들인 자사(子思)가 모두 자기 아내를 쫓아낸 이른바 ‘공씨삼세출처(孔氏三世出妻)’의 고사가 공자가어(孔子家語) 후서(後序)에 나온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공자가 이혼한 이유 증 하나는 공자의 부인이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子緣何休妻, 有一種說法 是因爲妻子口多言]”라고 한다. 휴처(休妻)란 출처(出妻)라고도 말하는데 아내를 쫓아냄을 의미한다. 공자휴처(孔子休妻). 공자출처(孔子出妻).
공씨서[孔氏書] 유학경전을 가리킨다.
공씨위정[孔氏爲政] 공씨(孔氏)는 공자(孔子)를 가리키며 정사함[爲政]이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함을 이른다. 공자가 벼슬하지 않자, 혹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공자가 “서경(書經)에 효(孝)에 대하여 말하였다.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치에 베푼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니, 어찌 꼭 공직에 나가야만 정치를 하는 것이 되겠는가?[書云: ‘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라고 하였다. <論語 爲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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