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야면복[公冶冕服] 공야(公冶)는 계무자(季武子)의 속대부로서 초(楚) 나라에서 돌아오는 양공(襄公)에게 심부름을 갔는데, 뒤늦게 기만당한 것을 알고는 자신의 읍을 도로 바친 뒤 계씨가 찾아오지 않는 한 상대를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에 양공으로부터 경(卿)이 입는 면복을 하사받았는데, 이 때문에 더욱 계면쩍어 하였으며, 병이 위독해졌을 때 가신들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면복(冕服)을 입혀 염(斂)을 하지 말라. 그것은 내가 덕이 있어서 상으로 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계씨(季氏)가 나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春秋左傳 襄公 29年> 면복(冕服)은 대부(大夫) 이상 고관들의 예복이다.
공야사[攻冶司] 조선(朝鮮) 시대(時代) 때 공조(工曹)에 딸려 모든 장색(匠色)이 만드는 물건(物件)에 관한 사무(事務)를 맡아보던 관청(官廳). 백공(百工 각종 기술자)의 제작, 금·은·주옥·동·납·철의 야주(冶鑄), 도와(陶瓦), 권형(權衡) 등과 관련한 일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장색(匠色)은 손재주를 가지고 여러 가지 물건(物件)을 만드는 것으로 업을 삼거나 또는 건축(建築) 따위 일에 불려 다니면서 벌이를 하는 사람. 즉, 목수(木手)나 미장이 같은 사람을 이른다. 백공(百工)은 장인(匠人), 각종 기술자를 이른다.
공야유설[公冶縲紲] 공야장이 포승줄에 묶임. 유설(縲紲)은 죄인을 묶는 검은 포승줄이다. 공야장(公冶長)은 춘추 시대 사람으로 공자(孔子)의 제자였는데, 자기 죄도 아니면서 애매한 옥살이를 하였다. 공자는 그것이 그의 죄가 아님을 인정하여 “사위 삼을 만한 사람이다. 비록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지만 그의 죄가 아니었다.[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라 하고, 그를 사위로 삼았다. <論語 公冶長>
공야장[公冶長]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 또는 魯)나라 사람. 성은 공야(公冶)고, 이름은 장(長)이며, 자는 자장(子長, 子張)이다. 공자(孔子)의 제자로, 공자는 그의 능력을 인정해서 사위로 삼았다는 내용이 논어(論語)에 나온다.
공야포승[公冶捕繩] 공야(公冶)는 공자의 제자이다. 이름은 장(長). 자는 자장(子長)이다. 새와 짐승의 울음소리를 알아듣는다는 사람이다. 그가 위(衛)나라에서 노(魯)나라로 가던 도중 “시냇가에서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자.”고 지저귀는 까마귀 소리를 들은 뒤에 때마침 아이를 잃고 길가에서 울고 있는 한 노파를 발견하고 시냇가에 한번 가보라고 일러준 일이 화근이 되어 살인범으로 몰려 옥에 갇혀 있다가 무죄임이 밝혀져 풀려나왔다. 뒤에 공자가 말하기를 “딸을 그에게 시집보낼 만하다. 포승줄에 묶여 옥에 갇힌 적은 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다.[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라 하고,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한다. <論語 公冶長·論語集疏> 유설(縲紲)은 죄인을 묶는 검은 포승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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