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어[共禦] 共(공)은 供(공)과 같고 禦(어)는 御(어)와 같으니, 공어(供御)는 진공(進貢)이란 말과 같다. 진공(進貢)은 공물(貢物)을 가져다 바침을 이른다.
공어[孔魚]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이다. 백어가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공어[供御] 임금이나 왕실에 물품을 바침. 또는 그 공물(供物)을 이른다.
공어수[供御囚] 북제(北齊)의 문선제(文宣帝)가 도죄(徒罪)에서 대벽(大辟)에 해당하는 죄수 중에서 선발하여 자신의 수레를 따라오게 하며 자신이 직접 칼을 들고 장난삼아 죽이곤 하였는데, 그 죄수들을 공어수(供御囚)라고 불렀다는 내용이 북사(北史) 권7 제본기 중(齊本紀中)에 나온다.
공어응주사지시[工於應主司之試] 工(공)은 善(선: 잘함)이고, 應(응)은 應對(응대)이고, 주사지시(主司之試)는 주고관(主考官)이 직접 구두(口頭)로 질문함이니, 곧 주고관의 질문에 응대를 잘하였다는 말이다.
공어편집[工於篇什] 시를 잘 지음. 안씨가훈(顔氏家訓) 제9편 문장(文章)에 “난릉(蘭陵)의 소각(蕭慤)은 양(梁) 왕실 상황후(上黃侯)의 아들로서 시를 잘 지었다.[蘭陵蕭慤, 梁室上黃侯之子, 工於篇什.]”고 하였다. 편집(篇什)은 시가(詩歌)나 시가의 편장(篇章)을 이르는 말이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기실참군(記室參軍) 소각집(蕭慤集) 9권(卷)”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형소(邢邵)의 소인조집서(蕭仁祖集序)에서 “소각(蕭慤)의 문장은 깎아 다듬은 부분이 간간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옛날 반악(潘岳)과 육기(陸機)는 궤를 나란히 하며 건안(建安)의 시풍을 따르지 않았고, 안연지(顔延之)와 사령운(謝靈運)은 소리를 모아서 마침내 태원(太原)의 기풍을 변혁하였다. 한대(漢代)로부터 진(晉)에 이르면서 작품의 취향은 오히려 잘 어울리지 못했고, 강북(江北)과 강남(江南)은 구상과 형식이 본래 다를 수밖에 없었다.”라 하였다. 공어편십(工於篇什).
공어필찰[工於筆札] 필찰(筆札)에만 힘을 기울임. ‘工(공)’은 원래 ‘공교(工巧)로움’ 곧 ‘기술이 뛰어난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에 힘을 쓰다’는 뜻으로 쓰였다. 필찰(筆札)은 원래 붓과 종이를 지칭하는데 의미가 확장되어 붓글씨나 글짓기, 글재주, 그림, 편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擊蒙要訣 革舊習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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