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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염[公鹽]~공영달소[孔穎達疏]~공영배자[公榮輩者]


공염[公鹽]  소금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거둘 때에는 쌀 1석당 소금 3석씩을 징수하는 것을 말한다.

공염불[空念佛]  부처님의 법에 대한 신심(信心) 없이 입 끝으로만 되뇌이는 헛된 염불(念佛)을 가리킨다. 그 같은 염불은 아무리 외어도 헛일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말한대로 실행(實行)이나 내용이 따르지 않는 주장(主張)이나 선전(宣傳). 곧 말만 앞세우고 실제(實際)가 없음의 비유(比喩)한다. 상대의 잘못을 아무리 타일러도 효과(效果)가 없을 때도 공염불이라 한다. 공수표(空手票).

공영달[孔穎達]  공영달(孔穎達)은 당(唐) 형수(衡水) 사람으로 자(字)는 중달(仲達)이며, 시호는 헌(憲)이다. 공자(孔子)의 32대손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태종(太宗) 때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있으면서 위징(魏徵)과 함께 수서(隋書)를 편찬하였으며, 태종(太宗)의 명을 받들어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 21명과 함께 오경정의(五經正義)를 편찬하였다. 원래의 자(字)가 충원(沖遠)이었는데 후세에 그의 자가 중달(仲達)로 바뀌었다. 이는 충(沖)이 중(仲)으로, 원(遠)이 달(達)로 잘못 표기되었고 이것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공영달[孔穎達]  형수인(衡水人)으로 당(唐)나라 초기의 학자(學者)이다. 자(字)는 중달(仲達)인데 젊어서부터 총민하고 박학하였으며 경학(經學)에 밝았고 기송(記誦)을 잘 하였다. 수(隋) 나라 때 명경(明經)에 천거되고, 당 나라에 들어와서 관은 국자사업(國子司業)을 지냈다. 국자감(國子監)에 있으면서 태종(太宗)의 명을 받아 오경정의(五經正義)를 찬하였는데 바로 지금 주소본(注疏本)의 오경소(五經疏)이다.

공영달소[孔穎達疏]  주역정의(周易正義)에서 공영달(孔穎達)이 쓴 소(疏)를 가리킨다. 공영달(孔穎達)은 당(唐)나라 기주(冀州) 형수(衡水) 사람으로, 자는 충달(沖達) 혹은 중달(仲達)이라고도 한다. 문장을 잘 짓고 약법(曆法)을 통달하였으며, 국자박사(國子博士)·국자사업(國子司業)·국자좨주(國子祭酒)를 역임하였다. 황제의 명으로 안사고(顔師古) 등과 함께 오경정의(五經正義)를 편찬하였다.

공영배자[公榮輩者]  공영(公榮)은 진(晉)나라 유창(劉昶)의 자이다. 그가 신분에 맞지 않게 조잡한 사람들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곤 하자 혹자가 이를 기롱하니, 그가 “나보다 나은 자와도 함께 마시지 않을 수 없고, 나보다 못한 자와도 함께 마시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자들은 나와 같은 자들이니 또 함께 마시지 않을 수 없다.[勝公榮者 不可不與飮 不如公榮者 亦不可不與飮 是公榮輩者 又不可不與飮]”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任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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