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사경상[課使耕桑] 삼국 시대 위(魏)나라 정혼(鄭渾)이 조조(曹操)에게 발탁되어 하채(下蔡)와 소릉(邵陵)의 수령이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고기 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빼앗고는 일과를 정해서 밭 갈고 누에를 치게 하였다.[渾所在奪其漁獵之具 課使耕桑]”라는 말이 삼국지(三國志) 권16 위서(魏書) 정혼전(鄭渾傳)에 나온다.
과삼[胯衫] 옛날 환자(宦者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숙직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원)가 입는 옷으로, 환관을 가리킨다.
과상청승[瓜上靑蠅] 원미지(元微之)는 처신이 깨끗하므로 재상이 되어 조당(朝堂)에 모였을 때에 마침 참외를 먹는데 파리가 날아와서 붙으니, 무원형(武元衡)이 파리를 쫓으며 “이 따위가 어디서 와서 여기에 모여드느냐.”라 하였다. 그것은 원미지를 욕한 것이었다.
과서주[過西州] 서주(西州)는 진(晉) 나라의 명재상인 사안(謝安)이 살던 곳으로, 양주 자사(揚州刺史)의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다. 사안은 평소 그의 생질인 양담(羊曇)을 애지중지하였는데, 사안이 죽자 양담은 수년 동안 슬픔에 잠겨 음악을 듣지 않고 사안이 있던 서주의 길을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번은 술에 취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주의 성문에 이르니, 좌우 측근들이 “이곳은 서주의 성문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양담은 슬픈 감회를 이기지 못하여 말채찍으로 문을 두드리고 통곡한 다음 돌아왔다. 이후로 서주를 지난다는 말은 친지나 친구 등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으로 쓰인다.
과선[戈船] 과선은 고대 전함의 일종이다. 한서(漢書) 권6 무제기(武帝紀)에 “귀의월후 엄(歸義越侯嚴)을 과선장군으로 삼아 영릉으로 나가도록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오자서서(伍子胥書)에 ‘과선이 있는데 배에 방패와 창을 실었기 때문에 그 배를 과선이라고 불렀다.’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