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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이부장[過時而不葬]~과시환[裹屍還]~과신라[過新羅]


과시[瓜時]  관직을 바꾸거나 임기가 끝나는 시기. 춘추시대 제(齊) 양공(襄公)이 연칭(連稱)과 관지부(管至父)에게 규구(葵丘)에 보내 수비를 맡길 때, 다음해 오이가 익을 무렵에는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한 옛일에서 온 말이다. 과기(瓜期(과기).

과시[果侍]  여시(女侍), 즉 여종을 말한다. 맹자(孟子) 진심 하(盡心下)에 “순(舜) 임금이 마른밥을 먹고 채소를 먹을 때에는 그대로 종신할 듯이 하시더니, 천자가 됨에 미쳐서는 진의(袗衣)를 입고 거문고를 타시며, 두 여자가 모시는 것을 고유한 것으로 여기셨다.[舜之飯茹草也 若將終身焉 及其爲天子也 被袗衣鼓琴 二女果 若固有之]”라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과(果)는 여시라고 하였다.

과시부제[過時不祭]  때가 지나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랑이 친영(親迎)하여 신부가 신랑의 집에 이르기 전에 신랑의 집안에 자최(齊衰) 또는 대공(大功)의 상(喪)이 났을 경우에는 당연히 혼례를 치를 수 없는데, 이에 대해 증자(曾子)가 “상기(喪期)가 끝난 뒤에 다시 혼례를 거행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제례(祭禮)도 때가 지나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법인데 어찌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혼례를 거행하겠는가.”라고 하였다. <禮記 曾子問>

과시이부장[過時而不葬]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은공(隱公) 2년조(年條)에, “장례기간이 지났는데도 기간에 맞추어 장례를 지내지 않았으면 장례를 지낼 수 없다고 이른다.[過時而不日 謂之不能葬也]”라 하였다. 고대에는 신분에 따라 빈(殯)을 하고 장례를 기다리는 기간을 천자(天子)는 칠월(七月), 제후(諸侯)는 오월(五月), 대부(大夫)는 삼월(三月), 사(士)는 유월(踰月 달을 넘김. 그 달의 그믐날을 넘김.) 등으로 엄격하게 규정하여, 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절차를 행할 수가 없었다.

과시환[裹屍還]  한(漢) 나라 마원(馬援)의 말에 “대장부는 마땅히 전장에서 죽어서 말[馬]가죽에 송장을 싸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라고 하였다. 즉, 마혁과시(馬革裹屍). 말가죽으로 자기 시체를 싼다는 뜻으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굳은 뜻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과신라[過新羅]  신라를 넘는다.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 순간에 진정한 도의 체득과는 거리가 있게 된다는 ‘동념즉괴(動念卽乖)’의 뜻과 같은 말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한 승려가 금강 일척전(金剛一隻箭)에 대해서 물으니, 조사(祖師)가 ‘벌써 신라를 지나갔다.[過新羅國去]’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소식(蘇軾)의 시에도 “나의 삶 역시 자연의 변화 따라 밤낮으로 물처럼 흘러가나니, 찰라(刹那)의 한 생각이 신라를 이미 지나간 것을 깨닫겠노라[我生乘化日夜逝 坐覺一念逾新羅]”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7 百步洪>

과신라국거[過新羅國去]  어떤 상황이 신속하고 민첩하게 전개되거나, 혹은 한 생각이 엉뚱하게 다른 곳으로 빠져들 때 쓰는 표현으로, 원래 선가(禪家)에서 나온 말이다. 한 승려가 금강일척전(金剛一隻箭)에 대해서 묻자, 조사(祖師)가 “그 화살이 벌써 신라를 넘어갔다.[過新羅國去]”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등 많은 선서(禪書)에 나온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백보홍(百步洪) 시에도 “나의 삶 역시 자연의 변화 따라 밤낮으로 물처럼 흘러가나니, 찰나(刹那)의 한 생각이 신라를 이미 지나간 것을 앉아서 깨닫겠노라.[我生乘化日夜逝 坐覺一念逾新羅]”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7>

과실상규[過失相規]  향약(鄕約)의 네가지 덕목 중의 하나. 나쁜 행실을 서로 규제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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