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곽의참유진[郭誼斬劉稹]~곽임종[郭林宗]


곽의참유진[郭誼斬劉稹]  당(唐)나라 때 평로군절도사(平盧軍節度使)로 있던 유종간(劉從諫)이 죽자, 조정에서는 그의 조카인 유진(劉稹)에게 낙양(洛陽)으로 들어와서 다시 조정의 명을 받게 하였다. 이에 유진은 조정의 명에 항거하여 그의 부하인 곽의(郭誼), 유무덕(劉武德), 유수의(劉守義)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는데, 유진이 조정에서 보낸 군대에 의해 형세가 궁하게 된 뒤에는 곽의가 도리어 유진의 목을 참수하여 조정에 바치면서 귀순하였다. 그러자 당시의 재상인 이덕유(李德裕)가 “유진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실로 곽의의 계략에 의해서인데, 형세가 궁해지자 도리어 유진의 목을 베어 바치면서 영화롭기를 도모하였다. 이런 자를 죽이지 않는다면 간사한 자를 징계할 길이 없다.”라고 하면서 주살하였다. <新唐書 卷214 劉悟列傳 劉稹>

곽임종[郭林宗]  곽태(郭泰)로, 임종(林宗)은 그의 자(字)이다. 중국 후한(後漢)의 사상가이다. 굴백언(屈伯彦)에게 사사하여 전적(典籍)에 통달했다. 낙양에 가서 당시 하남윤(河南尹) 이응(李膺)과 깊이 교제하며 명성을 떨쳤다. 향리에 은거하여 제자를 가르쳤는데, 그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後漢書 卷68 郭林宗列傳>

곽임종[廓林宗]  곽태(郭泰)로, 임종(林宗)은 그의 자(字)이다. 동진(東晋) 말기의 학자로 곽태(郭太)라고도 한다. 이응(李膺) 등과 교유하였으며 낙양에서 중망이 있었다. 덕행이 높아 조정에서 벼슬을 내려 부르기도 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인물을 평가할 때 언사가 각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은 적이 없다. 말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데 힘을 썼는데 제자가 천 명에 이르렀다.

곽임종[郭林宗]  임종(林宗)은 후한(後漢) 곽태(郭泰)의 자이다. 후한서(後漢書) 권68 곽태열전(郭泰列傳)에 “임종은 비록 인륜(人倫)을 잘하였지만 지나친 언론을 하지 않았기에 환관(宦官)들이 정권을 전횡하면서도 그를 해치지 못하였다.” 하였다.

곽임종[郭林宗]  임종은 후한(後漢)의 고사(高士)인 곽태(郭泰)의 자(字)이다. 황헌(黃憲)은 어렸을 때부터 덕망과 학식으로 사람들의 존숭을 받으며 안자(顔子)에 비유되기까지 하였는데, 곽태가 그에 대해서 “숙도의 그릇은 천경의 저수지 물처럼 넓고 깊어서 사람들이 맑게 할 수도 없고 흐려지게 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 측량할 수가 없다.”고 평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68 郭泰列傳> 숙도(叔度)는 황헌의 자(字)이다.

곽임종[郭林宗]  후한 때 사람으로 이름은 태(太)이다. 인륜을 잘 지키고 위태로운 발언과 엄한 논의를 하지 않아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환관들이 ‘당고(黨錮)의 난’을 일으켜 청류의 지식인들을 탄압할 때도 해를 당하지 않았다. 이후 문을 닫고 후진을 양성하였는데, 건녕(建寧) 원년에 태부(太傅) 진번(陳蕃)과 대장군(大將軍) 두무(竇武)가 엄나라 사람에게 살해당하자 들녘에서 통곡하며 “현인이 죽어 나라가 망했다.[人亡國瘁]”라고 한탄하였다.

곽임종[郭林宗]  임종은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곽태(郭泰)의 자(字)이다. 환제(桓帝) 때 당고(黨錮)의 사건이 일어나 천하의 명현(名賢)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구당(鉤黨)으로 지목받고 남김없이 멸절당하는 상황에서 몸을 깨끗이 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말을 겸손히 하여 환관(宦官)들의 중상을 면함으로써 끝까지 화를 당하지 않았다. 그의 인품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 범방(范滂)이 “그는 세상을 피해 숨어도 개지추(介之推)처럼 어버이의 뜻을 어기지 않고, 절조가 곧아도 유하혜(柳下惠)처럼 속세와 단절하지 않으며, 천자도 신하로 삼을 수 없고, 제후도 벗으로 삼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그 밖의 것은 알지 못한다.[隱不違親 貞不絶俗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吾不知其它]”라고 대답한 말이 후한서(後漢書) 권68 곽태열전(郭泰列傳)에 나온다.

곽임종[郭林宗]  후한(後漢)의 선비 곽태(郭太)를 말한다. 임종은 그의 자이다. 태부(太傅) 진번(陳蕃)과 대장군(大將軍) 두무(竇武)가 환관에게 죽임을 당하자, 곽태는 “이 사람들이 죽었으니 나라가 피폐해지겠구나.[人之云亡 邦國殄瘁]”라는 시경(詩經) 첨앙(瞻卬)의 시구를 외우며 탄식하였다. <後漢書 卷68 郭太列傳>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