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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보[關輔]~관보향진[關輔響震]~관복[款伏]


관보[關輔]  경사(京師)에 가까운 지역으로 관중(關中)과 삼보(三輔) 지구를 가리킨다. 위성(渭城) 이서를 우부풍(右扶風)에 소속시키고, 장안(長安) 이동을 경조윤(京兆尹)에 소속시키고, 장릉(長陵) 이북을 좌풍익(左馮翊)에 소속시켜 경사(京師)를 보조하게 하였으니, 이를 ‘삼보(三輔)’라고 한다. 전하여 도성과의 가까운 지역을 이른다.

관보향진[關輔響震]  소철(蘇轍)의 등우론(鄧禹論)에 “등우(鄧禹)가 처음에 군사를 이끌고 관중(關中)에 들어가 승전의 기세를 타고 홀로 승리해가니 관중(關中)과 삼보(三輔)에 명성이 크게 떨쳤다.[鄧禹 初以兵入關 乘勝獨克 關輔響震]”라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등우열전(鄧禹列傳)에 의하면 “광무제(光武帝) 경시(更始) 연간에 적미군(赤眉軍)이 서쪽으로 관중(關中)에 들어가니, 광무제(光武帝)는 적미군(赤眉軍)이 반드시 장안(長安)을 격파하리라 생각하고 등우(鄧禹)를 전장군(前將軍)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게 하였다. 등우(鄧禹)는 선후로 하동(河東)・안읍(安邑) 등을 쳐서 승리하고 여러 명의 대장을 참수하고, 그 공으로 대사도(大司徒)에 임명되었다. 등우(鄧禹)는 일찍이 승승장구(乘勝長驅)하였고 행군(行軍)에도 기율(紀律)이 있었으므로 군중이 모두 그 풍문을 듣고 군사를 맞이하였으니, 항복하는 자가 날마다 수천 명이 되었으며, 이때에 명성이 관서(關西)를 울렸다.”고 한다. 적미군(赤眉軍)은 서한(西漢) 말에 농민이 일으킨 반란군이다.

관복[款伏]  성심으로 귀부(歸附: 스스로 와서 복종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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