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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寬夫]~관부[欵附]~관부기시[灌夫棄市]


관부[寬夫]  관부는 송나라 채거후(蔡居厚)의 자인데, 그의 채관부시화(蔡寬夫詩話)에 대나무에 대한 논평이 나온다.

관부[欵附]  성심으로 귀부(歸附: 스스로 와서 복종함)함을 가리킨다.

관부[灌夫]  서한(西漢) 영음(潁陰) 출신으로 자는 중유(仲孺)이다. 오(吳)・초(楚) 등 7국(國)의 난(亂)을 평정했을 때 세운 공으로 중랑장(中郎將)에 임용되었다가 뒤에 연상(燕相)을 맡았으며, 두영(竇嬰)과 친한 사이였다. 일찍이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쳤고 성품이 강직하며 의협심이 있었으나 술을 마시면 남을 욕하곤 하였다. 승상 전분(田蚡)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전분의 집 연회에서 술기운을 빌려 그를 모욕하였다가 탄핵받아 불경죄로 멸족되었다. <史記 卷107 魏其武安侯列傳> 이로 인하여 후에 술기운을 빌려 마음속의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을 일러 관부라 한다.

관부[灌夫]  한나라 영음(潁陰) 사람이다. 오(吳)나라와 초(楚)나라 등 7개국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와 함께 종군하였다가 아버지가 전사하였다. 군법에 부자가 함께 종군하다가 한 사람이 전사하면 남은 사람은 시신을 모시고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관부는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고 돌아가려 하지 않고 분을 내어 말하기를 “오나라의 왕과 장군의 머리를 취하여 아비의 원수를 갚기를 원합니다.” 하고,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따르기를 원하는 군중의 장사 수십 인을 모았다. 출전하여 군영의 문에 이르자 전진하지 못하였다. 따르는 종 수십 기를 거느리고 오군으로 달려 들어가 오군의 대장기 아래에서 수십 인을 살상하였다. <漢書 卷52 灌夫傳> <史記 卷107 魏其武安侯列傳>

관부기시[灌夫棄市]  관부는 한대(漢代)의 무장(武將)으로, 무제(武帝) 때에 오(吳) 나라를 쳐 용명을 떨쳤으나, 뒤에 실세(失勢)한 두영(竇嬰)과 날마다 교유(交游)했으며, 위인이 호협(豪俠)하고 강직(剛直)하여 술주정을 잘했다. 뒤에 승상전분(田)의 좌석에서 주정을 부리며 좌중을 욕하여 분의 노여움을 사서 온 가족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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