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管子] 관자는 관성자(管城子)의 약칭인데, 토끼털을 모아 대롱에 끼워 만든 붓을 의인화하여 말한 것으로,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에 “진시황제가 몽염에게 탕목읍을 내려 관성에 봉해서 관성자라 호칭하게 했다.[秦皇帝使蒙恬 賜之湯沐而封諸管城 號曰管城子]”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관자[管子] 관자는 삼국 시대 위(魏)나라 관녕(管寧)을 가리킨다. 그는 자가 유안(幼安)으로 황건적(黃巾賊)의 난에 요동(遼東)으로 피난 갔는데 그곳에서 따르는 사람이 많아 한 고을을 이룰 정도였고 이들에게 시서(詩書)를 강론하여 교화(敎化)를 이루었다. 그는 여러 차례 천거를 받았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문제(文帝)가 즉위하여 조서(詔書)로 부르자 가족을 거느리고 바다에 배를 띄워 고향으로 돌아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三國志 卷11 魏書 管寧傳>
관자[管子] 춘추 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 관이오(管夷吾)이다. 자는 중(仲), 시호는 경(敬)이다. 제나라의 정승으로 있으면서 부국강병을 이룩하여 제 환공(齊桓公)을 패왕(覇王)으로 만들었다. 저서에는 관자(管子) 24권이 있다. <史記 卷62 管仲列傳>
관자[管子] 관중의 저서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으로 보아 관중의 업적을 중심으로 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썼고, 전국시대에서 한대(漢代)에 걸쳐서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전한(前漢)의 학자 유향(劉向)의 머리말에는 86편이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에는 10편과 1도(圖)가 빠져 있다. 내용은 법가적(法家的) 색채가 농후하고, 때로는 도가적(道家的)인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에 한서(漢書)에서는 도가(道家)에, 수서(隋書)에서는 법가(法家)에 넣고 있다. 정치의 요체(要諦)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가르치며, 신명(神明)을 공경하도록 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일이 으뜸이라고 하였다.
관자[管子]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의 명상(名相)인 관중(管仲)이 지은 책이다. 총 17권으로 법치주의(法治主義)와 경제정책(經濟政策)이 주로 서술되어 있고 기타 철학, 윤리까지도 언급되어 있다. 관중(管仲)은 이름이 이오(夷吾)이고 중(仲)은 그의 자(字)이다.
관자[管子] 서명(書名)으로 14권이다. 관중(管仲)이 지었다 하나 관중이 죽은 뒤의 일들이 많이 실려 있는 점으로 보아 후세 사람이 많이 보탠 듯하다. 법치주의(法治主義)와 경제정책(經濟政策)을 서술하고, 기타 철학 윤리까지 언급하였다. 원본(原本)은 86편이었으나 12편은 산일(散佚)되었다.
관자[管子] 중국 춘추 시대 제(齊) 나라 재상 관중(管仲)이 지은 책이다. 부민(富民)・입법(立法)・포교(布敎)를 서술하고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역설(力說)한다. 처음에는 86편으로 되었으나 원(元) 나라 이후에 76편으로 되었다.
관자[管子] 책 이름. 관자는 관중(管仲)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춘추 전국 시대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관이오(管夷吾)이다. 이 책은 제나라의 법가(法家)를 위주로 하여 기타 여러 학파의 학술사상과 주장을 모아 만들었다. 내용이 잡다하여 법가・도가(道家)・명가(名家)의 사상과 천문(天文)・역수(曆數)・지리・경제・농업 등의 과학지식을 포괄한다. 그중 심술(心術)・백심(白心)・내업(內業) 등은 기(氣)와 관련이 있는 도가 학설을 싣고 있으며, 수지(水地)편에서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목민(牧民)・권수(權修)・형세(刑勢)・칠법(七法) 등만이 관중(管仲)의 말이라고 한다.
관자[管子] 춘추시대 제(齊) 나라의 신하 관중(管仲)이 지은 책인데 모두 24권 79편이나 된다. 경제와 도덕의 불가분의 관계를 밝혀 백성의 경제생활 확립을 역설하였다. 이 책의 영향으로 농업과 상업이 진흥되었다고 한다.
관자[冠子] 옛날에 귀족의 부녀자들이 썼던 모자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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