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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사구[管仲射鉤]~관중상경[管仲上卿]~관중상앙[管仲商鞅]


관중사구[管仲射鉤]  제(齊)나라 양공(襄公)이 무도(無道)하자 관중(管仲)의 친구인 포숙아(鮑叔牙)는 공자(公子) 소백(小白)을 받들고 거(莒)나라로 망명하였고,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받들고 노(魯)나라로 망명하였다. 망명 중에 양공이 죽자 관중은 노나라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규를 제나라로 들여보내 임금이 되게 하려고 하였다. 이때 규가 관중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거(莒)의 길을 막고 소백을 죽이게 하였는데, 관중이 쏜 화살이 소백의 대구(帶鉤)를 맞추었으나, 죽이지는 못하였다. 그 뒤에 소백이 먼저 제나라로 돌아와서 임금이 되어서는 노나라로 하여금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을 제나라로 돌려보내게 하였다. 그러자 관중은 함거(檻車)에 갇히기를 자청하여 제나라로 왔는데, 포숙아가 환공에게 말하여 관중을 정승으로 삼게 하였다. 이에 관중은 환공을 잘 보좌하여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패자(霸者)가 되어 천하를 바로잡게 하였다. <史記 卷62 管晏列傳>

관중사환공중구[管仲射桓公中鉤]  공자 규(公子糾)와 공자 소백(公子小白)은 제 양공(齊襄公)의 아들인데 양공이 무도(無道)하자 화(禍)를 당할까 걱정되어 공자 규는 노(魯)나라로 출분(出奔)해 관중(管仲)과 소홀(召忽)을 사부(師傅)로 삼고, 공자 소백은 거(莒)나라로 출분하여 포숙아(鮑叔牙)를 부(傅)로 삼았다. 후일 공손무지(公孫無知)가 제 양공을 시해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두 공자는 서로 임금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둘러 귀국하는데 관중이 쏜 화살이 소백의 허리띠 고리에 맞았다. 소백은 거짓으로 죽은 체하여 먼저 귀국해 임금이 되니, 이가 제 환공(齊桓公)이다. 후에 제 환공은 포숙아(鮑叔牙)의 천거에 의해 관중을 중부(仲父)로 삼아 패자(霸者)가 되었다.

관중상경[管仲上卿]  왕이 상경(上卿)의 예로 관중(管仲)에게 연향을 베풀려고 하니, 관중이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신은 미천한 유사(有司)입니다. 천자의 두 수신(守臣)인 국자(國子)와 고자(高子)가 만약 봄가을에 조회 와서 왕명을 받든다면 어떻게 대우하려 하십니까? 배신(陪臣)은 감히 사양하겠습니다.” 하니, 왕이 “나는 그대의 공을 가상히 여기니, 가서 그대의 직분을 수행하라.”라고 명하니 관중이 하경(下卿)의 예를 받았다. <左氏傳說 卷3 僖公> 국자는 국귀보(國歸父)이고, 고자는 고혜(高傒)를 가리킨다.

관중상앙[管仲商鞅]  관중(管仲)과 상앙(商鞅)은 춘추전국 시대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한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인물로 각각 관자(管子)와 상군서(商君書)를 통해 부국강병을 위한 실리주의를 역설하였다. 관중(管仲)은 춘추 시대 제(齊)나라의 현상(賢相)으로 환공(桓公)을 도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전력하여, 환공으로 하여금 제후를 규합하고 천하를 바로잡아 다스려서 오패(五霸)의 으뜸이 되게 하였다. 상앙(商鞅)은 전국 시대의 정치가로 일찍이 진 효공(秦孝公)의 정승이 되어 법령을 고치고 부강책을 써서 치적을 크게 올림으로써, 끝내 진 효공으로 하여금 당대의 패주(霸主)가 되게 하였다.

관중소기[管仲小器]  관중은 제 환공(齊桓公)의 신하로 이름은 이오(夷吾)인데 공자가 “관중의 기국(器局)이 작구나.[管仲之器小哉]”라고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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