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차[官差] 관아에서 파견하는 군뢰(軍牢)나 사령(使令)을 이른다.
관차[官次] 관차(官次)는 관직(官職)이다.
관찰사[觀察使] 조선조 때 외관직(外官職)이며, 문관의 종2품 벼슬인데, 팔도(八道)의 장관(長官)이다. 더러 정3품 당상(堂上)이 보임되기도 하고 정2품도 보임되기도 하였다. 감사(監司)・도백(道伯)・도신(道臣)이라고도 한다.
관찰지사[觀察支使] 관찰사(觀察使)를 보좌하는 관원이다.
관채[管蔡] 관채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우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다.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즉위하여 주공(周公)이 섭정을 하니, 관숙과 채숙은 주공이 성왕을 해칠 것이라고 모함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뒤에 성왕이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두려워하여 다시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과 모의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공에 의해 토벌되었다. 주공이 관숙과 채숙을 처벌하고 나서 지은 시가 시경(詩經) 치효(鴟鴞)이다.
관채[管蔡] 주 무왕(周武王)의 아우인 관숙(管叔) 선(鮮)과 채숙(蔡叔) 도(度)의 병칭이다. 무왕이 죽은 뒤에 무왕의 아우인 주공(周公)이 어린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攝政)하고 있었는데, 관채가 주공을 모함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을 끼고 반란을 일으키자, 주공이 성왕의 명을 받들고 정벌하여 무경과 관숙을 죽이고 채숙을 유배 보낸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35 管蔡世家> 시경(詩經) 빈풍(豳風) 동산(東山) 주(註)에 “주공이 동쪽으로 정벌하러 떠난 지 3년이 되었다.[周公東征已三年矣]”라는 말이 나온다.
관채위륙 주공우왕[管蔡爲戮 周公右王]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죽였으되 주공(周公)은 성왕(成王)을 보좌(輔佐)하였다.<春秋左氏傳 魯襄公三 二十一年> 관숙(管叔)・채숙(蔡叔)・주공(周公)은 형제(兄弟) 사이이다.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주(周)나라를 배반(背叛)하고 은(殷)나라의 복국(復國)을 도모(圖謀)하는 자들을 돕자, 주공(周公)이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죽여 반란(叛亂)을 평정(平定)하고서 성왕(成王)을 보좌(輔佐)하였다.
관채유언[管蔡流言]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주 무왕(周武王)의 아우요, 주공(周公)의 형들로 사기(史記) 관채세가(管蔡世家)에 “무왕이 붕어하고 아들 성왕(成王)이 즉위했으나 나이가 어린 탓에 주공이 섭정하니 관・채가 나라에 말을 퍼뜨리되 ‘공이 장차 어린애에게 이롭지 못하리라[管蔡流言放國曰 公將不利於孺子]’라고 해서 주공이 황공하여 동도로 피했더니, 뒤에 성왕이 주공을 맞아 돌아오매 그들이 모반하였다. 왕이 주공에게 토벌을 명하여 그들을 잡아 죽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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