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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왕[廣陵王]~광릉진법[光陵陣法]~광리노사[廣利勞師]


광릉왕[廣陵王]  광릉왕(廣陵王) 형(荊)은 광무의 아홉째 아들로 산양왕(山陽王)에 봉해졌는데, 재능은 있었으나 성질이 음험하였고 늘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 명제 때에 동해왕을 무고하였으나 명제가 비밀에 부치고 광릉왕으로 옮겼으며, 역모 사건을 일으켰을 때에도 극형을 가하지 않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끝내 뉘우치지 않고 제사 때에 무당으로 하여금 저주하게 하였다가 복주(伏誅)를 청하는 탄핵이 올라가자 자살하였는데, 명제가 애달프게 여겨 사왕(思王)이라는 시호까지 내렸다. <後漢書 卷42>

광릉진법[光陵陣法]  조선(朝鮮)의 세조(世祖)가 제정한 오위진법(五衛陣法)을 가리킨다. 이 진법은 하도(河圖)의 무늬와 낙서(洛書)의 변화를 본받아 만든 것으로서, 외진(外陣)・내진(內陣)・간진(間陣)・합진(合陣) 등 각종 형태를 말하고 따라서 원형과 방형으로 변하는 것을 말하여 천지 음양의 이치를 상징하였으며, 진중(陣中)의 윤리를 오륜(五倫)에 비하여 만들어서 인륜의 도리를 알게 하였다.

광리[廣利]  한 무제(漢武帝)가 총애한 이 부인(李夫人)의 오빠 이광리(李廣利)를 가리킨다. 무제가 대완(大宛)의 이사성(貳師城)을 정벌할 목적으로 그를 이사장군(貳師將軍)으로 임명하여 보내자, 군대를 거느리고 총령(蔥嶺)을 넘어 4년 만에 대완을 평정하였으며, 그 공으로 해서후(海西侯)에 봉해졌다. <史記 卷123 大宛列傳>

광리노사[廣利勞師]  노사(勞師)는 군대를 위문하는 것이다. 광리(廣利)는 한 무제(漢武帝)의 신하 이광리(李廣利)로 그의 누이동생 이 부인(李夫人)이 무제에게 총애를 받았다. 이광리는 자신의 공명을 위해 속국의 기병 6천과 나라의 악소년 패거리를 모아 이사성(貳師城)에 가서 말을 약탈해 오겠다고 약속했으나, 병사들만 실컷 고생시키고 인심은 잃어버렸으며 출병의 일은 실패했다. <漢書 卷61 李廣利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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