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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박첨망[廣博瞻望]~광범문[光範門]~광범삼서[光範三書]


광박첨망[廣博瞻望]  당(唐) 나라 때 장건(張騫)이 대장군 위청(衛靑)의 흉노 정벌에 따라가, 수초(水草)가 있는 곳을 잘 알았던 공로로 광박첨망(廣博瞻望)의 뜻을 취해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졌다. 그 뒤 장군이 되어 우북평(右北平)에 나갔다가 실기(失期)하여 참형(斬刑)을 간신히 면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史記 卷111>

광백지감[曠百之感]  광세지감(曠世之感). 백세(百世)를 초월하여 뜻이 통하다.

광범[光範]  광범(光範)은 존안(尊顔)을 나타내는 불가(佛家)의 용어이다.

광범문[光範門]  선정전(宣政殿) 서남(西南)에서 중서성(中書省)으로 통하는 문이니, 곧 재상(宰相)이 정무(政務)를 살피는 곳을 이른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등용(登用)을 요구하는 의도로 올린 상재상서(上宰相書) 첫머리에 “정월 이십칠 일에 전 향공진사(鄕貢進士) 한유는 삼가 광범의 문하에 엎드려 두 번 절하고 상공 각하께 글월을 바칩니다.[正月二十七日 前鄕貢進士韓愈 謹伏光範門下 再拜獻書相公閣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唐大家韓文公文抄 卷2 上宰相書>

광범삼서[光範三書]  광범은 광채가 나는 의용(儀容)을 뜻하는데 재상과 같은 고관대작의 풍모나 그 사람을 가리킨다. 한유(韓愈)가 재상에게 자신을 추천하여 벼슬을 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세 차례나 올려 광범삼서(光範三書)라는 말이 생겨났다. 한유가 정원(貞元) 8년(792)에 급제하고 나서 그 후에 이부(吏部)의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에 응시하였다가 성취하지 못하자, 11년에 벼슬을 구하기 위해 당시 재상인 조경(趙憬)・가탐(賈耽)・노매(盧邁)에게 세 차례 편지를 올렸다. 이를 광범삼서(光範三書)라고 하는데, 소득이 없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때 올린 편지가 상재상서(上宰相書), 후십구일부상서(後十九日復上書), 후입구일부상서(後廿九日復上書)이다.

광범상서[光範上書]  한창려집(韓昌黎集) 권16에 실린 상재상서(上宰相書)를 가리킨다. 광범(光範)은 선정전(宣政殿) 서남쪽에서 중서성(中書省)으로 통하는 문인데, 이 글에 “삼가 광범문 아래 엎드려 재배하고 상공 합하께 글을 바칩니다.”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광범은 재상의 풍모를 뜻한다.

광범상서[光範上書]  광범은 존안(尊顔)과 같은 뜻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칭인데, 한유(韓愈)가 일찍이 과거(科擧)에 급제하고 나서 등용(登用)을 요구하는 의도로 당시의 재상(宰相)에게 올린 편지의 첫머리에 “정월 이십칠일에 전 향공진사 한유는 삼가 광범의 문하에 엎드려 두 번 절하고 상공 각하께 글월을 바칩니다.[正月二十七日 前鄕貢進士韓愈 謹伏光範門下 再拜獻書相公閣下]”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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