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사[曠士] 흉금이 넓게 트인 선비. 광사는 가슴속이 활달하게 툭 터져 명랑 쾌활한 인사를 말한다. 남조(南朝) 송(宋)나라 포조(鮑照)의 대방가행(代放歌行)에 “소인은 본디 악착스러우니, 어찌 광사의 회포를 알리오.[小人自齷齪 安知曠士懷]”라고 하였다.
광사[狂士] 뜻은 크고 고상하지만 실천이 못 미치는 사람. 공자가 말하기를 “중도(中道)의 사람을 얻어서 도를 전하지 못할진댄 반드시 광견(狂狷)이라도 얻어서 가르치리라.”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광(狂)이란 곧 뜻만 대단히 고상하여 행실이 뜻에 걸맞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論語 子路>
광사[狂士] 일 처리에는 미숙하면서 뜻이 원대하여 진취적인 기상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로, 맹자(孟子) 진심 하(盡心下)에 공자(孔子)가 진(陳)나라에 있으면서 노(魯)나라의 광사를 그리워했다는 말이 나온다.
광사곡궁도[狂士哭窮途] 진(晉) 나라 완적(阮籍)이 수레를 타고 가다 길이 막히면 문득 통곡하고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뜻이 높고 진취적인 인사[狂士]들이 곤경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晉書 阮籍傳>
광산[匡山] 광산은 중국 사천(四川) 강유현(江油縣)서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대광산(大匡山) 또는 대강산(大康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백(李白)이 그곳에서 글을 읽었다 한다. 두보(杜甫)의 불견(不見) 시에 “이생을 못 만난 지 오래이어라, 거짓 미친 꼴이 참으로 가련하구려 …… 광산의 글 읽던 곳으로, 머리 희었으니 좋이 돌아올지어다.[不見李生久 佯狂眞可哀 …… 匡山讀書處 頭白好歸來]”라고 하였다.
광산[匡山] 이백(李白)이 일찍이 은거(隱居)하여 글을 읽으며 공부했다는 촉(蜀) 땅 면주(綿州) 창명현(彰明縣) 남쪽의 대광산(大匡山)의 약칭이다. 이백이 야랑(夜郞)으로 귀양 간 뒤에 소식을 알지 못해 애태우면서 두보(杜甫)가 지은 ‘불견(不見)’이라는 오언 율시(五言律詩)의 결구(結句)에 “광산이라 옛날에 글 읽던 그곳으로, 흰머리 날리면서 빨리 돌아와 줬으면[匡山讀書處 頭白好歸來]”이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0>
광산[匡山] 중국의 여산(廬山)을 가리킨다. 주나라 무왕 때 광유(匡裕)가 여산에서 지내며 글을 읽었기 때문에 여산을 광려산(匡廬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광산효렴[光山孝廉] 광산은 탁광무(卓光茂)의 본관이다. 효렴은 한 무제(漢武帝) 때 지방관이 그 지방에 효행이 있고 청렴결백한 사람을 뽑아 중앙에 추천하여 등용시키던 과거 제도 또는 여기서 뽑힌 선비인데, 여기에서는 과거에 급제한 탁광무를 일컫는다.
광상[廣桑] 동해에 있다는 선산(仙山)으로, 공자(孔子)가 광상진군(廣桑眞君)이 되어 이 산을 다스린다고 한다. <太平廣記 卷19>
광상[廣顙] 넓은 이마. 이마가 넓음. 방이광상(方頤廣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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