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廣西] 지명(地名). 송대(宋代)에는 광남서로(廣南西路)를 칭하였는데, 그 지역의 융주(融州)・검주(黔州)・의주(宜州) 같은 곳에 만이부락(蠻夷部落)이 많았다.
광서[光緖] 청(淸)나라 덕종 때의 연호로 서기 1875년부터 1908년까지이다.
광서수부[廣西帥府] 중국 동남부 지역으로 남쪽이 월남에 접경하고 있는 곳이다. 명 태조(明太祖) 홍무(洪武) 9년(1376)에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를 두었는데, 이것이 광서포정사사(廣西布政使司)가 되었다. 광서수부(廣西帥府)는 이 포정사를 지칭한다. <明史 卷45 地理志 廣西>
광성[廣成] 광성은 광성자(廣成子)이다. 산당사고(山堂肆考) 공동문도(崆峒問道)에 “광성자는 황제(黃帝) 헌원(軒轅) 시대 사람으로 공동산(崆峒山) 석실(石室) 속에서 은거하였는데, 황제 헌원이 찾아가 도(道)의 요점을 물었다.”라고 하였다.
광성[狂醒] 술을 마시지 않아도 미친다는 뜻으로, 마음이 방달(放達)하여 세상을 오시(傲視)하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 개관요(蓋寬饒)가 일찍이 은평후(恩平侯) 허백(許伯)의 주연에 참석하여 말하기를 “나에게 술을 많이 따르지 말라. 내가 바로 술미치광이다.”라고 하자, 곁에 있던 승상 위후(魏侯)가 말하기를 “차공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미치는데, 하필 술을 마셔야만 미치겠는가.[次公醒而狂 何必酒狂]”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광성송[廣成訟] 후한(後漢) 마융(馬融)이 환제(桓帝)에게 지어 올린 수렵(狩獵)의 뜻을 말한 송(訟)이다.
광성옹[廣成翁] 황제(黃帝) 때의 선인(仙人) 광성자(廣成子)를 이른다.
광성유유회[廣成有遺誨] 광성자(廣成子)가 황제(黃帝)에게 일러 준 지도(至道)와 양생(養生)에 관한 설을 말한다. 장자(莊子) 재유(在宥)에 그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광성자[廣成子] 상고(上古) 시대 전설상의 선인(仙人)으로 공동산(崆峒山)의 석실(石室)에 은거하였다. 황제(黃帝) 헌원(軒轅)이 재위(在位) 19년 만에 그를 찾아가서 지도(至道)의 요점을 묻자, 육체와 정신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 것이 장생의 비결이라고 하였다. <莊子 在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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