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애[乖崖] 괴애(乖崖). 송나라 때의 신하인 장영(張詠)의 호이다. 송나라 복주(濮州) 사람으로 자는 복지(復之)이고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그는 익주(益州), 항주(杭州), 승주(升州) 등의 자사(刺史)로 나가서 가는 곳마다 치적을 세웠다고 한다.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외집(外集) 권14 문고미정(聞鼓美政)에 보면, 범연귀(范延貴)가 공무를 띠고 금릉(金陵)을 지나다가 그 고을을 다스리는 장영을 만났는데, 장영이 범연귀에게 묻기를 “그대는 연로(沿路)를 다니면서 훌륭한 관원을 본 적이 있는가?” 하니, 범연귀가 대답하기를 “얼마 전에 제가 원주(袁州)를 지나다가 평향(萍鄕)을 다스리는 수령 장희안(張希顔)을 보았는데, 그가 참으로 훌륭한 관원이었습니다.” 하면서 장희안(張希顔)의 선정(善政)을 칭찬하여 “그 고을의 경내로 들어가 보면 역참과 다리와 길이 모두 완전히 수리되어 있고, 저자에서는 도박하는 사람이 없으며, 밤에 여관에 머물면서 들으니 경(更)을 치는 소리가 분명하였습니다.”라고 하며 사례를 하나하나 들어 설명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장괴애(張乖崖)는 범연귀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 여겨 말하기를 “희안도 훌륭하지만 그대도 훌륭한 관원이다.”하고는 그날로 조정에 두 사람을 모두 천거하였다. 그 뒤에 장희안은 발운사(發運使)가 되고 범연귀는 각문지후(閣門祗候)가 되어 모두 훌륭한 관리로 일컬어졌다고 한다.
괴애[乖崖] 장괴애(張乖崖)가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있다가 떠나면서 중 희백(希白)에게 봉투 하나를 주고 말하기를 “10년을 기다렸다가 이 봉투를 뜯어보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10년이 지난 뒤에 장괴애가 죽었다는 부음이 진주(陳州)에서 도착하니, 촉 땅 사람들이 저자를 철수하고 통곡하였다. 중 희백이 장괴애를 위하여 재계를 설치하고 태수 능책(凌策)을 초청하여 그 봉투를 뜯어보니, 장괴애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고 그 초상화의 찬사에 “어긋나면[乖] 풍속과 안 맞고 가파르면[崖] 사물을 이롭게 하지 않으므로 괴애라는 이름으로 나의 덕을 표시한다.”라고 하였다. 희백이 그의 초상화를 천경관(天慶觀) 선유각(仙遊閣)에다 걸어 놓고 사당을 세웠다. <潛確類書>
괴어[騩馭] 여섯 필의 괴마(騩馬)가 끄는 수레라는 말로, 황후의 행차를 말한다. 괴(騩)는 천흑색(淺黑色)의 말이다.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자기 스스로 자기의 만리장성과 같은 존재를 허물어 없앰. 자신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는 사람을 순간적인 욕심 때문에 없애버림. 어리석은 생각에서 일을 그르치게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괴연[塊然] 아무런 감정없이 외로이 있는 모양이다.
괴엽냉도[槐葉冷淘] 느티나무 잎 국수. 옛날 괴엽(槐葉)의 즙(汁)을 면(麪)에 섞어서 만든 국수로 일종의 냉면을 가리킨 것이다.
괴엽냉도[槐葉冷淘] 홰나무 잎의 즙을 밀가루에 섞어서 만든 일종의 냉면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괴엽냉도(槐葉冷淘) 시에 “푸르디푸른 높다란 홰나무 잎을, 따서 주방에 가져다주고, 밀가루를 시장에서 사다 섞으니, 즙과 찌끼가 완연히 함께하누나.[靑靑高槐葉 采掇付中廚 新麪來近市 汁滓宛相俱]”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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