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오[魁梧] 한서(漢書) 장량전(張良傳)의 안사고(顔師古) 주(注)에 의하면, 괴(魁)는 큰 모양이고, 오(梧)는 그것이 놀랄 만하다는 뜻이다. 안씨가훈(顔氏家訓) 제3편 형제(兄弟)에 “왕현소(王玄紹)가 몸집이 장대했다.[玄紹以形體魁梧]”는 말이 나온다.
괴외[蒯聵] 당조의 장수절(張守節)이 지은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의하면 자객열전의 형가(荊軻)가 태자 단(丹)을 만나기 전 천하를 유랑할 때 유차(楡次)에 들려 검술을 논했던 개섭(蓋聶)이라는 사람을 칭한 것이라 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괴외[蒯聵] 위 영공(衛靈公) 39년 태자 괴외(蒯聵)가 영공의 부인 남자(南子)를 증오하여 죽이려다 발각되어 진(晉) 나라로 망명했다. 영공이 죽고 태자의 아들 괴첩(蒯輒)이 임금이 되니 이 자가 바로 출공(出公)인데, 괴외가 고국에 돌아오려 하자 군대를 출동시켜 몰아내었다. 그러나 결국 괴외가 들어와 장공(莊公)이 되고 출공은 노(魯) 나라로 망명하였다. <史記 卷37>
괴외괴첩[蒯聵蒯輒] 괴외(蒯聵)는 위 영공(衛靈公)의 세자이고, 첩(輒)은 괴외의 아들이다. 괴외가 영공의 부인인 남자(南子)를 증오하여 부하인 희양속(戱陽遫)을 시켜서 죽이려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송(宋) 나라를 거쳐 진(晉) 나라로 망명하였는데, 영공이 죽자 첩이 즉위하니 이 사람이 위 출공(衛出公)이다. 그 뒤에 괴외가 위 나라로 들어가려 했으나 위 나라 사람들이 군대를 출동시켜 저지하였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출공 12년에 비로소 귀국하여 즉위하니, 이 사람이 위 장공(衛莊公)이다. 출공은 장공이 귀국하자 노(魯) 나라로 망명했다가 장공이 기씨(己氏)에게 살해된 뒤에 다시 들어와서 복위하였다.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괴외지사[蒯聵之事] 한서(漢書) 준불의전(雋不疑傳)에 의하면 “서한(西漢) 소제(昭帝) 시원(始元) 5년에 한 남자가 나타나서 ‘무제(武帝)의 이미 죽은 아들 여태자(戾太子)다.’라고 하니 경사(京師)가 크게 어지러웠는데, 준불의(雋不疑)가 말하기를 ‘괴외(蒯聵)가 그 아버지 영공(靈公)에게 죄를 짓고 진(晉)나라로 출분(出奔)하였는데, 뒤에 영공(靈公)이 죽고 괴외(蒯聵)의 아들 첩(輒)이 즉위(卽位)하여 괴외(蒯聵)가 위(衛)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였다. 여태자(戾太子)가 무제(武帝)에게 죄를 짓고 도망하여 죽지 않았으니 곧 죄인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조옥(詔獄: 왕의 명령을 받들어 신문하고 가두는 것)으로 송치하였다. 천자(天子)와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이 준불의(雋不疑)를 극찬하며 상을 주고 곽광(霍光)은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으나 준불의(雋不疑)는 굳이 사양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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