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산[蛟山] 교룡산(蛟龍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북 남원시에 있는 산이다. 산기슭에서 정상까지는 돌을 깎아 쌓은 교룡산성(蛟龍山城)이 있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의병 1만여 명이 이곳에서 산화하였다.
교산[喬山] 교산은 교산(橋山)으로도 쓰는데, 황제(黃帝)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제왕의 무덤이 있는 곳을 뜻한다. 황제가 스스로 죽을 날을 선택하여 70일 동안 떠나갔다가 70일 만에 돌아와 신하들과 작별하고 죽었기에 교산에 장례를 지냈는데 산이 갑자기 무너져서 보니 관(棺) 속에 시신은 없고 단지 황제의 검과 신만 있었다고 한다. <列仙傳 卷上 黃帝>
교산[喬山] 교산은 전설상의 임금인 황제(黃帝)를 장사 지냈다는 곳으로 임금의 무덤을 뜻한다. 황제가 수산(首山)의 동을 캐 형산(荊山)의 아래 정호(鼎湖)에서 솥을 주조하여 완성하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황제를 태우고 승천하였는데, 이때 신하와 후궁 70여 명이 용을 타고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용의 수염을 잡으니 수염이 뽑혀 떨어지면서 황제의 활과 검이 함께 땅에 떨어졌다. 이에 남은 백성들이 활과 검을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史記 卷28 封禪書>
교산[喬山] 왕릉을 가리킬 때 쓴다. 황제(黃帝)를 교산에 장사지냈는데 산릉(山陵)이 갑자기 무너져서 묘혈(墓穴)에는 시신(屍身)이 없고 칼과 신만 남아 있었다. <列仙傳>
교산[橋山] 중국 섬서성(陝西省) 중부현(中部縣) 서북방 지점에 있는데,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한 무제(漢武帝)가 삭방(朔方)을 수행하고 돌아와서 황제(黃帝)의 교산총(橋山塚)에 제사하였다.” 하였으며, 교릉(橋陵)이라고도 한다.
교산[橋山] 황제의 무덤이 있는 곳을 뜻한다. 황제가 스스로 죽을 날을 선택하여 70일 동안 떠나갔다가 70일 만에 돌아와 신하들과 작별하고 죽었기에 교산에 장례를 지냈는데 산이 갑자기 무너져서 보니 관(棺) 속에 시신은 없고 황제의 검과 신만 있었다고 한다.
교산궁검[喬山弓劒] 황제(黃帝)를 교산에 장사지냈는데 나중에 산이 무너졌을 때 보니 관속이 비어 시신은 없고 부장했던 활이며 검, 신발 등만 남아 있었다는 데서 임금의 죽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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