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九江] 대강(大江)이 심양(潯陽)에 이르러 아홉 갈래로 분류되었다는 설(說)을 비롯하여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구강[九江]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원수(沅水)・점수(漸水)・원수(元水)・진수(辰水)・서수(敍水)・유수(酉水)・풍수(灃水)・자수(資水)・상수(湘水)가 모두 동정호로 합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書經 禹貢>
구강[九江] 서경(書經) 우공 채전에는, 동정호(洞庭湖)에 합류되는 원수(沅水)・점수(漸水)・원수(元水)・진수(辰水)・서수(敘水)・유수(酉水)・예수(澧水)・자수(資水)・상수(湘水)를 구강으로 보았는데, 심양지기(尋陽地記)에는, 오강(烏江)・봉강(蜂江)・오백강(烏白江)・가미강(嘉靡江)・견강(畎江)・원강(原江)・늠강(廩江)・제강(提江)・균강(箘江)을 구강으로 보았다. 이 밖에도 여러 설이 있다.
구강거맹호[九江去猛虎] 후한 광무제 때의 구강 태수(九江太守) 송균(宋均)이 구강에 호랑이가 많은 것을 보고 “호랑이가 산에 있는 것은 자라가 물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회(江淮)에 맹수가 있는 것은 북쪽에 닭이나 돼지가 있는 것과 같다. 지금 백성을 해치는 것은 잔혹한 관리이다.”라 하고는 간리(奸吏)를 물리치기에 힘썼더니, 호랑이가 모두 동쪽으로 강을 건너가 버렸다 한다. <後漢書 卷41 宋均傳>
구강무숙[九江茂叔] 구강(九江)은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으로, 이곳에 여산(廬山)이 있으며, 무숙(茂叔)은 주돈이(周敦頤)의 자(字)이다. 송나라 때 주돈이가 병이 들자 남강군(南康軍)의 장관(長官)이 되어 나가 여산의 연화봉(蓮花峯) 아래에 집을 짓고 강학하면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 등을 저술하여 송학(宋學)을 열었다.
구강사[九江師] 구강은 안휘성(安徽省) 일대를 가리키는데, 이곳에서 유방(劉邦)의 군사가 항우(項羽)의 군사를 포위한 적이 있다.
구강지원구 개가이복[九江之元龜 皆可以卜] 서경(書經)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의하면 형주(荊州) 구강(九江)에서 큰 거북을 바친다고 하였다. 전쟁 등 국가의 큰일을 행하기에 앞서 그 길흉(吉凶)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칠 때 거북을 사용하는데, 죽은 큰 거북의 등껍질을 불에 구워 열기에 의해 갈라지는 선의 형태를 보고 길흉을 판단한다. 여기서는 그곳에서 난 거북이라 하여 모두 질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강지화[口講指畵] 말로 설명하고 그림을 통해 가르친다는 뜻으로 간곡하게 교육하는 자세(姿勢)를 비유(比喩)하는 말이다.
구객사향리[久客思鄕里] 후한(後漢) 온서(溫序)가 외효(隗囂)의 별장(別將) 구우(苟宇)에게 붙잡혀 온갖 회유를 받았으나 따르지 않자 칼로 자결하게 하니, 온서가 수염을 입에 물고 좌우를 돌아보며 “적에게 핍박을 당해 죽게 되었으나 수염만은 땅에 더럽히지 않게 해야겠다.[旣爲賊所迫殺 無令鬚汙土]”라고 하고는 칼에 엎어져 죽었다. 광무제가 이 소식을 듣고는 낙양성(洛陽城) 부근에 장지(葬地)를 하사하고 후하게 부의(賻儀)를 하였는데, 온서가 장자(長子)인 온수(溫壽)의 꿈에 나타나 “오래도록 객지에 떠돌다 보니 고향 생각이 난다.[久客思鄕里]”라고 하였으므로, 온수가 상서하여 황제의 허가를 받은 뒤에 고향으로 돌아와 선영(先塋)에 반장(返葬)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81 獨行列傳 溫序>
구객의선패[久客宜旋旆] 두보(杜甫)의 시 산수(散愁)에 “오랜 떠돌이에 응당 돌아가야 하지만 부흥의 군주도 아직 전쟁 끝내지 못했네.[久客宜旋旆 興王未息戈]”라고 하였다.
구갱[九坑] 구천. 하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