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扣關] 關(관)은 문의 뜻으로, 구관(扣關)은 ‘문을 두드리다’라는 의미이다.
구관[舊觀] 옛 모습. 옛 경관. 오래된 전각. 예전의 모양이나 경치.
구관[漚菅] 관초(菅草)를 물속에 오래 담가둔 것이다. 관초(菅草)는 벼과의 속하는 다년초로 잎이 가늘고 길다. 그 줄기는 밧줄을 꼬거나 신을 삼을 수 있고, 그 잎은 지붕을 이는 이엉으로 쓸 수 있다.
구관[九官] 국정(國政)을 담당하는 아홉 관직으로, 토목공사를 관장하는 사공(司空), 농업을 관장하는 후직(后稷), 교육과 호적 및 토지대장을 관장하는 사도(司徒), 법과 형벌을 관장하는 사(士), 백직을 관장하는 공공(共工),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을 관장하는 우(虞), 삼례(三禮)를 관장하는 질종(秩宗), 음악을 관장하는 전악(典樂),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납언(納言) 등이다. 순 임금이 우(禹)를 사공으로, 기(棄)를 후직으로, 설(契)을 사도로, 고요(皐陶)를 사로, 수(垂)를 공공으로, 익(益)을 우로, 백이(伯夷)를 질종으로, 기(夔)를 전악으로, 용(龍)을 납언으로 삼았다. <書經 舜典>
구관[九官] 순 임금 때 설치되었던 아홉 개의 관서로써, 백규(百揆)・후직(后稷)・사도(司徒)・작토(作土)・공공(共工)・우(虞)・질종(秩宗)・전악(典樂)・납언(納言)이 있었고, 주대(周代)의 구관은 총재(冢宰)・사도(司徒)・종백(宗伯)・사마(司馬)・사구(司寇)・소사(少師)・소보(小保)・소부(少傅)가 있었다.
구관[九官] 순(舜)임금 때에 두었던 아홉 가지 관직으로 사공(司空)・후직(后稷)・사도(司徒)・사(士)・공공(共工)・우(虞)・질종(秩宗)・전악(典樂)・납언(納言) 등을 이른다. 당시 우(禹)는 사공(司空)으로서 백규(百揆)를 겸하였는 바, 백규(百揆)는 주(周)나라의 총재(冢宰)와 같다. 위의 구관(九官)은 주(周)나라 이후의 구경(九卿)에 해당한다.
구관[九官] 순(舜)임금 때의 아홉 대관(大官)을 이른다. 순(舜) 임금은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 요(堯) 임금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는데,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오전(五典)을 삼가 아름답게 하자 백성들이 오전을 잘 따랐으며, 백규(百揆)에 앉히자 백규가 잘 시행되었으며, 사문(四門)에서 손님을 맞게 하자 사문의 손님들이 화목하였으며, 큰 산에 들어가게 하자 폭풍우와 천둥 벼락에도 혼미(昏迷)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구관[九官] 중앙 정부의 장관 9인을 가리킨다. 서경(書經) 순전에, 순 임금이 여러 관원들에게 두루 당부한 뒤에 결론적으로 “아, 그대들 22인은 공경한 자세를 유지하며 때에 맞게 하늘의 일을 돕도록 하라.[咨汝二十有二人 欽哉 惟時亮天功]”고 하였는데, 사악(四岳) 1인과 지방 장관인 12목(牧)과 함께 이 구관이 22인 중에 포함된다.
구관[九關] 아홉 겹 하늘의 관문이라는 뜻으로, 대궐을 말한다.
구관[具官] 본래 관리의 인원수를 채워 갖춘다는 뜻인데, 당송(唐宋) 이후로 문장을 지을 때 구체적인 직명을 생략하고 단지 구관(具官)이라고 쓰는 예가 생겨났다. 정식(正式)으로 비(碑)를 세울 때에는 관직명을 구체적으로 보완하여 새겨 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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