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기유미회[九死其猶未悔] 전국 시대 초(楚)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임금님이 나를 내치면서 혜초 띠를 주시고, 또 향초인 채초(茝草)를 가려 뽑아 거듭 주셨네. 이 또한 내 마음에 달갑게 여기는 바이니, 아홉 번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旣替余以蕙纕兮 又申之以攬茝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其猶未悔]”라는 말이 나온다.
구사량[仇士良] 당나라 문종(文宗) 때의 환관이다. 붕당이 심한 틈을 타서 정권을 잡아 권세를 농락한 대표적인 환관이다.
구사미회[九死未悔] 이소경(離騷經)에 이르기를 “이미 나를 버리면서 혜초 띠를 주고, 또 혜초를 취하여 거듭 주시네. 그래도 내 마음에 좋아하는 바이니, 비록 아홉 번을 죽어도 후회하지 않으리라.[旣替余以蕙纕兮 又申之以攬茝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其猶未悔]”라고 하였다.
구사분유[舊社枌楡]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고향을 일컫는 말인 분유사(枌楡社)를 가리킨다. 한 고조가 고향인 풍(豐)에 느릅나무를 심어 토지의 신(神)으로 삼은 데서 유래한다.
구사불한[九死不恨] 소식(蘇軾)의 시에 “남만(南蠻)에 와서 죽을 뻔했어도 나는 원망하지 않아, 이 유람 너무도 좋아 내 평생 최고였으니까.[九死南荒吾不恨 茲游奇絶冠平生]”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43 六月二十日夜渡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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