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삭[丘索] 상고 시대의 서책인 팔삭(八索)과 구구(九丘)를 말한다. 팔삭은 팔괘(八卦)의 설(說)에 관한 책이라고도 하고, 팔왕(八王)의 법(法)에 관한 책이라고도 한다. 구구는 구주(九州)의 지(志)라고 한다.
구산[龜山] 구산은 송나라 유학자 양시(楊時)이다. 남검(南劍) 장락(將樂) 사람으로, 정호(程顥)・정이(程頤)에게 수학했는데, 하남(河南) 영창(潁昌)으로 정호를 찾아가 뵙고 돌아갈 때 정호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내 학문이 남쪽으로 내려가겠구나.” 했다고 한다. 양시의 아들은 양적(楊迪)으로 정이에게 수학하였다. <宋史 卷428 楊時傳> <宋元學案 卷25 龜山學案>
구산[龜山] 구산은 송(宋) 나라 양시(楊時)이다. 자는 중립(中立)이며, 구산은 그의 호이다. 송나라 남검주(南劍州) 장락(將樂) 사람으로,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제자로, 유초(游酢), 여대림(呂大臨), 사양좌(謝良佐)와 함께 정문 사선생(程門四先生)이라고 불린다. 저서에 이정수언(二程粹言), 구산선생어록(龜山先生語錄), 구산집(龜山集)이 있다. 사후에 그의 제자였던 육당(陸棠)이 스승을 배반하였다.
구산[舊酸] 구일(舊日)의 유산(儒酸)을 이른다. 유산은 빈한한 선비를 지칭한다. 소식(蘇軾)의 시 약공택음시일대풍(約公擇飮是日大風)에 “시를 지어 부끄러이 드렸을 때 공께서 웃으며 즐거워하셔, 돌아오는 길 비바람 소리에 더욱 불안했네. 마땅히 살찐 소 잡아 공께서 드시게 했어야, 유생의 궁상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을 텐데.[作詩愧謝公笑歡 歸來瑟縮愈不安 要當啖公八百里 豪氣一洗儒生酸]”라고 하였다.
구산[緱山] 구산은 구지산(緱氏山)이다. 주나라 영왕(靈王)의 태자(太子)인 왕자교(王子喬)는 본래 생황을 불기 좋아하여 봉황의 울음소리를 잘 내곤 하였는데, 나중에 선인(仙人)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숭고산(嵩高山)으로 들어가 30여 년간 도를 닦은 뒤 구지산에서 백학을 타고 승천했다고 한다. <列仙傳>
구산[緱山] 구산은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에 있는데 구령(緱嶺) 또는 구씨산(緱氏山)이라고도 한다.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였던 왕자 진(晉)은 직간(直諫)하다가 폐하여 서인이 되었는데 피리 불기를 좋아하였다. 도사(道士) 부구생(浮丘生)이 진을 인도하여 숭고산(嵩高山)에 올라간 지 30여 년에 환량(桓良)을 보고 “7월 7일 나를 구씨산에서 기다리라고 우리집에 고하라.”고 하였다. 그날이 되자 과연 백학을 타고 산봉우리에 머물렀다 한다. <列仙傳 王子喬>
구산[緱山]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구씨산(緱氏山)이라고도 한다. 본디는 사람이 도를 닦아서 신선이 되는 곳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가리킨다. 옛날에 왕자교(王子喬)가 구령에서 백학(白鶴)을 타고 올라가서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列仙傳 王子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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