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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생[歐陽生]~구양수[歐陽脩]


구양생[歐陽生]  서한(西漢) 초기 천승(千乘) 사람이가. 성은 구양(歐陽)이고, 자는 화백(和伯)이다. 이름은 자세하지 않다. 금문상서(今文尙書) 구양씨학(歐陽氏學)의 개창자이다. 복생(伏生)에게서 상서(尙書)를 배웠다. 복생의 학문을 예관(倪寬)에게 전수했고, 예관이 구양생의 아들에게 전수하여, 이로부터 구양씨가 대대로 상서학(尙書學)을 전수하게 되었다. 증손 구양고(歐陽高)가 박사를 지냈고, 하후승(夏侯勝)도 그에게서 학문을 전수 받았다. 현손 구양지여(歐陽地餘)와 8대손 구양흡(歐陽歙)에 이르기까지 박사(博士)를 역임했다. 저서에 상서구양장구(尙書歐陽章句)와 구양설의(歐陽說義)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구양생[歐陽生]  구양생은 한유(韓愈)의 친구인 구양첨(歐陽詹)을 이른다. 민월(閩越) 사람으로 멀리 장안(長安)에 와서 벼슬하다가 죽었다. 이에 한유가 그를 위해 지은 구양생애사(歐陽生哀辭)에서 “구양첨은 민월 사람인데 부모가 늙으셨다. 조석의 봉양을 버리고 서울에 오니, 그의 마음은 장차 서울에서 벼슬하고 돌아가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였으며, 부모의 마음 또한 이것을 원하였다. 그리하여 구양첨은 부모 곁에 있으면 비록 떠나는 근심은 없으나 마음이 즐겁지 못하였고, 서울에 있으면 비록 떠나온 근심은 있으나 그 마음이 즐거웠으니, 구양첨과 같은 자는 이른바 ‘자신의 뜻으로써 부모의 뜻을 봉양한 자[以志養志者]’일 것이리라.”라고 하였다. <韓昌黎文集 歐陽生哀辭>

구양수[歐陽脩]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길주(吉州) 여릉(廬陵) 사람이다. 추밀부사(樞密府使),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였다. 한유(韓愈)에게 깊이 영향을 받았으며 매요신(梅堯臣)과 문장으로 천하에 이름이 났다. 또 그는 붕당론(朋黨論)이라는 글을 지어 붕당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붕당을 이룬 사람들이 군자냐 소인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저서에 집고록(集古錄), 신당서(新唐書), 신오대사(新五代史) 기타 시문집 등이 있다. 군서(群書)에 널리 통하고 시문(詩文)으로 유명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구양수[歐陽脩]  자(字)는 영숙(永叔)인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으로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운동(古文運動)의 영수로 꼽히며 벼슬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가우(嘉祐) 2년 당시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지공거(知貢擧: 과거시험 위원장)의 직책을 맡았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한 자들이 자신을 급제시킨 지공거(知貢擧)를 스승으로 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인연으로 소식(蘇軾)은 평생 구양수(歐陽脩)를 스승으로 섬겼다.

구양수[歐陽脩]  북송(北宋)의 정치가 겸 문인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하였다. 길주(吉州) 여릉(廬陵) 사람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문구를 살 돈이 없어 어머니가 직접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가며 가르쳤다고 한다. 24살에 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아갔다. 인종과 영종 때 범중엄(范仲淹)을 중심으로 한 관료파에 속해 활약하다가 신종 때 동향의 후배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며 관직에서 물러났다. 송대 초기의 미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시로는 매요신(梅堯臣)과 겨루고 문장으로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히며 송대 고문의 위치를 확고부동하게 한 공이 있다. 전집으로 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 153권이 있고, 신당서(新唐書)와 오대사기(五代史記)를 편찬하기도 했다.

구양수[歐陽脩]  송(宋)나라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육일거사(六一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벼슬은 용도각 직학사(龍圖閣直學士)・개봉 지부(開封知府)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범중엄(范仲淹)의 폄사(貶事)에 대해 사간(司諫) 고약눌(高若訥)과 맞서다가 한때 이릉령(夷陵令)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저서에 문충집(文忠集)・거사집(居士集) 등이 있다. <宋史 卷319>

구양수[歐陽脩]  송나라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인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진사 출신으로 벼슬은 우정언(右正言)・지제고(知制誥)・양주(揚州)・영주(潁州)의 지주(知州)와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저서에는 신당서(新唐書)・신오대사(新五代史)・모시본의(毛詩本義)・집고록(集古錄)・귀전록(歸田錄)・낙양모란기(洛陽牡丹記)・문충집(文忠集)・거사집(居士集)・육일시화(六一詩話)・육일사(六一詞) 등이 있다. <宋史 卷319> <宋元學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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