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구양자[歐陽子]~구양철[歐陽澈]~구양출유기[歐陽黜劉幾]


구양이십구[歐陽二十九]  대가족주의인 중국의 옛 풍습으로 한 집안 여러 종형제(從兄弟)를 통틀어서 번호로 부르는 호칭이다.

구양자[歐陽子]  구양자는 송(宋)나라의 구양수(歐陽脩)를 높여 칭한 것으로, 자(字)는 영숙(永叔)이며,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로 자호(自號)하였다. 소식(蘇軾)이 구양수의 문집인 육일거사집(六一居士集)의 서문을 쓰면서 “구양자는 오늘날의 한유이다.[歐陽子 今之韓愈也]”라고 표현한 대목이 나온다.

구양자[歐陽子]  중국 북송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구양수(歐陽脩)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육일거사(六一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太子少師)가 되었다. 송나라 초기의 미문조(美文調) 시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의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며,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구양작서재[歐陽作序才]  구양은 당나라의 문인 구양첨(歐陽詹)을 가리킨 것으로, 그가 당 덕종(唐德宗) 연간에 어느 8월 15일 즉 중추일 밤에 여러 친구들과 함께 다른 한 친구의 집에 가서 함께 달을 완상하면서 완월시(翫月詩)를 읊고 아울러 서(序)를 지었던바, 그 서가 당시에 매우 회자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그 서의 대략에 “달은 완상할 만하니, 달을 완상하는 것은 예전부터의 일이다. 사영운(謝靈運)의 효월부(曉月賦)와 포조(鮑照)의 완월시(翫月詩)와 사조(謝眺)의 뜰 앞에서와 유량(庾亮)의 누각에서의 일들이 모두 달을 완상한 것이다.[月可翫 翫月 古也 謝賦 鮑詩 眺之庭前 亮之樓中 皆翫也]”라고 하였다. <歐陽行周文集 卷9>

구양철[歐陽澈]  송(宋)나라 정강(靖康) 연간에 구양철이 국정의 폐단을 논했다가 채용되지 않았으며, 또 고종(高宗)이 금(金)나라를 피해 강을 건너 남경(南京)에서 즉위하자 행재소(行在所)까지 걸어가서 봉사(奉事)를 올렸다가 진동(陳東)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그로부터 3년 뒤에 고종이 뉘우치고 두 사람을 승사랑(承事郞)에 추증하였다. <宋史 卷455 歐陽澈列傳>

구양철[歐陽澈]  송 고종(宋高宗) 때의 태학생(太學生) 구양철은 성격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직언(直言)을 잘하였는데, 고종(高宗) 즉위 초에 봉사(封事)를 올려 당시의 대신(大臣)들을 간신이라고 극렬하게 비난하다가 마침내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그가 죽음을 당하는 날 폭설이 내려 도로의 통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宋史 卷455 歐陽澈列傳>

구양첨시거진사[歐陽詹始擧進士]  구양첨(歐陽詹)이 비로소 진사에 합격함. 상곤(常袞)과 구양첨(歐陽詹)은 모두 당나라 때의 인물이다. 당나라 덕종(德宗) 초기에 민월(閩越)은 궁벽한 고을이라 그 풍속이 문서와 이사(吏事)를 잘 알지 못했는데, 상곤이 민월(閩越) 지역의 관찰사가 되어 향교를 세우고 교육을 하니 민월 지방에 문치가 이루어졌으며, 그 지역 사람으로서 구양첨이 처음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구양출유기[歐陽黜劉幾]  유기(劉幾)는 송(宋) 나라 때의 문인 유휘(劉煇)의 본명이다. 유휘는 본디 어려운 말 쓰기를 좋아하여 구양수(歐陽脩)가 그를 매우 싫어했던 나머지, 일찍이 구양수가 고시(考試)를 주관했을 때 유휘의 글을 보고는 큰 주필(朱筆)로 마구 뭉개버렸던 데서 온 말인데, 뒤에 유휘가 이름을 고치고 다시 응시했을 때는 구양수가 그를 매우 칭상(稱賞)하여 진사제일(進士第一)로 발탁했다고 한다.

구양현[歐陽玄]  중국 원(元)나라의 학자. 자는 원공(原功)이며 호는 규재(圭齋)이다. 인종(仁宗) 때 진사에 급제한 뒤에 국자박사(國子博士)・한림 대제(翰林待制)를 지내고, 순제(順帝) 때 한림 직학사(翰林直學士)가 되어 요(遼)・금(金)・원(元) 세 나라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허겸(許謙)의 제자로 게혜사(揭傒斯)와 함께 허문사걸(許門四傑)의 한 사람으로 꼽히며, 40여 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종묘와 조정의 문책(文冊)과 제고(制誥)가 거의 그의 손에서 나왔다. 목은 이색이 20세에 원나라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원나라의 국자감 생원으로 있을 때에 구양현을 종유하면서 학업을 닦았고, 또 제과(制科)에 응시했을 때에는 좌주(座主)가 된 인연이 있다. 경세대전(經世大典)・사조실록(四朝實錄)을 편찬하였고, 규재문집(圭齋文集) 15권이 있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