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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완[苟完]~구완[九畹]~구왕백전지장[歐王白戰之場]


구완[苟完]  사치하지 않고 대강 면모만 갖춘다는 뜻이다. 공자가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에 대해 논평하기를 “집에 거처하기를 잘하도다. 처음 집안의 물건을 소유했을 때는 ‘그런대로 모여졌다.’ 하고 다소 집안 물건이 갖추어졌을 때는 ‘그런대로 갖추어졌다.’ 하고 많이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런대로 좋다.’ 하였다.[善居室 始有 曰苟合矣 少有 曰苟完矣 富有 曰苟美矣]”라고 하였다. <論語 子路>

구완[九畹]  이소(離騷)에 “난초를 자라게 하는 구완(九畹)이다.”라 하였는데, 이것은 난초 심은 동산을 말한 것이다. 구완(九畹)의 완(畹) 자의 음은 본디 원으로, 밭 30묘(畝)의 단위를 뜻하는 글자이다. 그런데 완연하다는 완(宛) 자의 뜻을 붙였다 하여 흔히 완으로 읽기도 한다.

구왕[九王]  누르하치(奴兒哈赤)의 열두째 아들인 섭정왕(攝政王) 다이곤(多爾袞)으로 병자호란 때에 강화도를 함락시킨 자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를 아홉째 아들로 잘못 알아 구왕이라 칭하였다.

구왕[九王]  예친왕(睿親王) 다이곤(多爾袞)을 가리킨다. 청나라 태조의 열넷째 아들로 지략과 용맹이 뛰어났으며, 이자성(李自成)을 무찌르고 북경에 입성했고 어린 순치제를 황위에 올린 뒤 섭정왕(攝政王)이 되었다.

구왕[九王]  청나라 태조(太祖)의 열넷째 아들 예충친왕(睿忠親王) 도르곤(多爾袞)의 별칭으로, 태종의 아홉째 동생이라는 뜻이다. 태종이 죽자 어린 세조(世祖)를 즉위시키고 섭정왕(攝政王)이 되었으므로 섭정친왕(攝政親王)이라고도 부른다. <淸史稿 卷218 諸王4>

구왕[龜往]  국어(國語) 진어(晉語一) ‘헌공(獻公)의 여융(驪戎) 정벌 점괘(占卦)에, 승리하되 불길(不吉)하다는 점괘가 나왔다(獻公卜伐驪戎勝而不吉)’에 “내가 여융(驪戎)을 치는 것을 점치면서 사람을 시켜 여융을 치는 사유를 아뢰게 하였는데 거북점의 징조가 흩어지는 것으로 나에게 응답하였습니다.[我卜伐驪, 龜往離散以應我.]”라는 대문이 나온다. 왕(往)은 거북점을 치면서 사람을 시켜 거북에게 여융(驪戎)을 치러 가는 사유를 아뢰게 하는 것이다.

구왕[歐王]  북송(北宋) 시대 문장가(文章家)들로서 당송팔가(唐宋八家) 중의 두 사람이기도 한 구양수(歐陽脩)와 왕안석(王安石)을 합칭한 말이다.

구왕백전지장[歐王白戰之場]  시 짓기를 겨루는 자리를 뜻한다. 구왕은 송나라 때의 문장가인 구양수(歐陽脩)와 왕안석(王安石)을 말한다. 백전(白戰)은 특정한 어휘를 쓰지 못하게 하고 시를 짓게 하는 것으로, 구양수가 처음 시도하였다. 예컨대 눈[雪]에 대한 시를 지을 경우 눈과 관련이 있는 학(鶴), 호(皓), 소(素), 은(銀), 이(梨), 매(梅), 노(鷺), 염(鹽) 등의 어휘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것이다. 그 뒤에 다시 소식(蘇軾)이 빈객들과 함께 이를 회상하며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시 가운데 “당시의 규칙을 그대들은 준수하라. 손으로만 싸워야지 무기를 잡으면 안 될지니라.[當時號令君聽取 白戰不許持寸鐵]”라고 읊은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34 聚星堂雪>

구왕증소[歐王曾蘇]  구왕증소는 문장(文章)이 뛰어난 당(唐)・송(宋) 팔대가(八大家) 중에 당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을 제외한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 왕안석(王安石), 증공(曾鞏)과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삼부자(三父子)를 합칭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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