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摳衣] 옷섶을 걷는다는 뜻인데, 옷자락을 밟지 않도록 옷자락을 두 손으로 약간 들어 올리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할 때 하는 거동으로 스승에 대한 공경의 표시이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의 “어른이 계신 방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옷자락을 공손히 치켜들고 실내 구석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가서 자리에 앉은 다음에 응대를 반드시 조심성 있게 해야 한다.[摳衣趨隅 必愼唯諾]”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스승 앞에 나아가 배움을 청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구의[摳衣] 심의(深衣)의 앞자락을 걷어잡음. 구의는 옷의 앞자락을 들어 올려 경의를 나타낸다는 뜻으로 스승으로 섬김을 이르는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어른의 신발도 밟지 말고 자리도 넘어가지 말며, 구의(摳衣)하여 모퉁이로 닫는다.[毋踐屨, 毋踖席, 摳衣趨隅, 必愼唯諾]”라고 하였다. 후세에 스승 앞에 나아가 강론을 듣는 것을 구의라 하였다.
구의[摳衣] 옷의 앞깃을 여미거나 들어 올리는 것, 즉 귀한 이를 만날 때 공경(恭敬)의 뜻을 나타내는 동작이다.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에서 “먼저 들어간 사람이 벗어둔 신발을 밟지 말고, 먼저 들어가 앉은 사람의 방석을 밟지 말고, 옷자락을 추어들고 구석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가서 자리를 잡은 뒤, 물어볼 때는 반드시 신중하고 공경하게 답해야 한다.[毋踐屨, 毋踖席, 摳衣趨隅, 必愼唯諾]라고 하였다.
구의[柩衣] 구(柩)를 덮는 이불로, 이금(夷衾)을 말한다. 검은 천으로 만든 질(質)과 붉은 천으로 만든 쇄(殺)를 이어 붙여 사용하는데, 질(質)은 길이가 손의 위치와 가지런하고 쇄(殺)는 발을 가릴 정도이다.
구의[柩衣] 계빈(啓殯) 후에 관에 덮는 홑이불. 널을 내갈 때 널 위에 덮는 홑이불 같은 긴 베를 이른다.
구의[九疑] 구의는 중국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구의산(九疑山)을 이른다. 아홉 개의 봉우리 모양이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할 때의 비유로 쓰이기도 한다. 창오(蒼梧)라고 하는데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행(巡行)하다가 승하하여 이곳에 묻혔다 한다. <史記 卷1 五帝本紀>
구의[九疑] 구의산(九疑山)으로 창오산(蒼梧山)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으며 순(舜)임금을 장사(葬事)한 곳이라 전한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순임금은 강남 구의산에 묻혔는데 영릉이라 한다.[舜葬於江南九疑, 是爲零陵]”고 하였다.
구의[丘儀] 명나라 구준(丘濬)이 지은 가례의절(家禮儀節)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구의[求衣] 왕이 정사(政事)에 부지런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한 문제(漢文帝)가 처음 즉위해서 물시계 소리가 끝나갈 때, 즉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옷을 걸치고 정사에 임했다고 한다. <漢書 卷51 鄒陽傳> 추양(鄒陽)의 상오왕서(上吳王書)에 “효문황제(孝文皇帝)가 관중(關中)을 점거하고 들어가 왕위에 서게 되매 한심(寒心) 소지(銷志)하여 구의(求衣)를 밝히지 아니했다.[始孝文皇帝據關入立, 寒心銷志, 不明求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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