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래지[驅而來之] 강제로 천하가 자기에게 귀부(歸附)하도록 하는 일이다. 소철(蘇轍)의 수론(隋論)에 “옛날 성인(聖人)이 천하(天下)를 취한 것은 휘몰아 온 것이 아니고, 천하를 지킨 것은 강제로 보유한 것이 아니었다. 천하가 스스로 와서 붙좇게 하여 부득이 군주(君主)가 된다면 내 자신이 천하의 이익을 취하지 않더라도 천하의 이익이 스스로 이른다. 이 때문에 거취(去就 진퇴進退)하는 권한은 임금에게 있고 백성에게 있지 않으니, 이것을 두고 ‘사람의 존재가치가 무겁고 외물의 존재가치가 가볍다.’고 이른 것이다.[古之聖人, 其取天下, 非其驅而來之也. 其守天下, 非其劫而留之也. 使天下自附, 不得已而爲之長, 吾不役天下之利, 而天下自至. 夫是以去就之權, 在君而不在民, 是之謂人重而物輕.]”라고 한 데서 보인다.
구이무원[懼而無怨] 두려워하되 부모님을 원망하지 아니함. 동몽선습(童蒙先習)에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거든 기뻐하되 잊지 않으며, 미워하시거든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마라.[父母愛之, 喜而不忘. 惡之, 懼而無怨.]”라고 보인다.
구이백만[九夷百蠻] 구이(九夷)는 동이(東夷)의 아홉 나라이고, 백만(百蠻)은 만(蠻)의 백 읍(邑)이 있는 것이다.
구이사[求二社] 입춘이나 입추가 지난 뒤 각각 다섯 번째의 무일(戊日)을 찾는 방법이다. 입춘 이후의 춘사(春社)에는 곡식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고, 입추 이후의 추사(秋社)에는 곡식의 수확에 감사한다.
구이사촌[口耳四寸] 입과 귀의 간격(間隔)이 가깝다는 뜻으로, 남에게서 들은 내용(內容)을 이해(理解)하기도 전(前)에 남에게 옮김, 곧 자기(自己)의 몸에 붙지 않은 학문(學問)을 이른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소인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귀로 듣고는 곧바로 입으로 내놓는다. 입과 귀의 거리는 불과 네 치일 따름이니, 일곱 자나 되는 이 몸을 어떻게 아름답게 할 수가 있겠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는 말이 나온다. 구이지학(口耳之學).
구이성의[久而誠矣] 성(誠)은 성실하고 진실한 것으로 힘쓰지 않고 저절로 성실해짐을 이른다. 심경부주(心經附註) 제4권 정자(程子) 시청언동사잠(視聽言動四箴)에 “마음이여! 본래 허(虛)하니, 사물에 응함에 자취가 없다. 마음을 잡음에 요점이 있으니, 보는 것이 그 법칙(法則)이 된다. 사물이 눈앞에서 가리워 사귀면 마음이 옮겨 가니, 밖에서 제재하여 안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사욕을 이겨 예(禮)로 돌아가면, 오래되면 저절로 될 것이다.[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라고 하였다. 중용(中庸)에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실히 하려는 것은 사람의 도(道)이니, 성실한 자는 힘쓰지 않고도 도(道)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고도 알아서 종용(從容)히 도(道)에 맞으니 성인(聖人)이요, 성실히 하려는 자는 선(善)을 택하여 굳게 잡는 자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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