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어인의 무오야[苟志於仁矣 無惡也]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공자가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면 악행(惡行)이 없을 것이다.[苟志於仁矣 無惡也]”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청나라 말의 문학가 유월(兪樾)은 군경평의(群經評議)에서 “상장(上章)에 ‘惟仁者(유인자) 能好人(능호인) 能惡人(능오인)’이라 하고, 이 장(章)에 ‘苟志於仁矣 無惡也’라 하였으니, 이 두 장(章)은 전장(前章)의 문의(文義)를 후장(後章)에서 이어받은 것이다. 이 장(章)의 惡자는 바로 상장(上章)의 ‘能惡人(능오인)’의 惡(오)자이다. 대체로 인자(仁者)는 사람들에 대해 좋아할 만하면 좋아하고 미워할 만하면 미워하니, 이것이 이른바 ‘능호인(能好人) 能惡人(능오인)’이다.……가의(賈誼)의 신서(新序) 도술편(道術篇)에 ‘진심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仁(인)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仁)의 주요(主要)한 작용을 사랑으로 인식한 것이 옛사람들의 통론(通論)이었으니, 가령 마음속에 남을 미워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곧 인(仁)에 뜻을 두었다고 할 수 없다.[上章云 惟仁者 能好人 能惡人 此章云 苟志於仁矣 無惡也 兩章文義相承 此惡字卽上能惡人之惡 蓋仁者之於人 好所當好 惡所當惡 所謂能好人能惡人也……賈子道術篇曰 心兼愛人謂之仁 然則仁主於愛 古之通論 使其中有惡人之一念 卽不得謂之志於仁矣]”라고 하여,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남을 미워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풀었다.
구지욕지[鸜之鵒之] 노나라 문공(文公)과 성공(成公) 시기에 “구욕이 오면 임금님 출국하여 치욕을 당하리라. 구욕이 날아다니면 임금님 국외의 교야에 계시고 신하가 가서 말[馬]을 드리리라. 구욕이 뛰어다니면 임금님 건후에 계시면서 의복을 요구하리라. 구욕이 와서 둥지 지으면 임금님 멀리 나가 계시다가 주부는 고생하다 죽고 송부는 교만하리라. 구욕이 오면 갈 때는 노래하고 올 때는 곡하리라.[鸜之鵒之, 公出辱之. 鸜鴒之羽, 公在外野, 往饋之馬. 鸛鵒跦跦, 公在乾侯, 征褰與襦. 鸜鵒之巢, 迄哉搖搖, 稠父喪勞, 宋父以驕. 鸜鵒鸜鵒, 往歌來哭.]”라는 내용이 동요가 있었다. 공이 나가서 욕을 당한다는 말은 소공(昭公)이 국외로 달아나 욕을 당한다는 말이다. 구욕(鸜鵒)은 원래 구멍 속에서 서식하는 새로 노(魯)에는 없는 조류였는데, 노 소공(魯昭公) 25년에 그 새가 노에 나타나 둥우리를 틀었으므로 그를 이상히 여겨 춘추(春秋)에 “구욕이 와서 둥우리를 틀었다.[有鸜鵒來巢]”라고 기록하였다. <春秋左傳 昭公 二十五年>
구지유도[求之有道] 사물을 탐구함에 있어서 그 방법이 있음을 이른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구하는 데에 방법이 있고 얻는 데에 명이 있는데도, 이런 것을 구하려 든다면 꼭 얻는다고 할 수가 없으니, 이것은 구하는 대상이 나 자신의 밖에 있기 때문이다.[求之有道 得之有命 是求無益於得也 求在外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구지유도[求之有道]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구하는 데에는 방법이 있고 얻는 데에 운명이 있다. 이렇게 구하는 것은 얻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나니 바깥에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求之有道 得之有命 是求無益於得也 求在外者也]”라고 하였다. 집주(集註)에 ‘구하는 데에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함부로 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얻는 데에 운명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얻을 수는 없다는 뜻이며, ‘바깥에 있는 것’이란 부귀영달과 같은 외물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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