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합[九合] 아홉 번 모으다. 九(구)는 구체적인 숫자가 아니라 많은 수를 뜻한다. 규합(糾合)과 같은 것으로 보아 ‘규합하다’로 풀 수도 있다.
구합곡[句合曲] 구(句)는 음악의 부호이다. 송・요 때 의빈(儀賓)의 음을 표시하는 부호이다.
구합구완구미[苟合苟完苟美]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공자가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을 평가하기를 ‘그는 집안 살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다. 처음 살림을 나서 재물을 소유하게 되자, 「이만하면 모였다.」라고 하였고, 조금 더 장만하게 되자, 「이만하면 충분히 갖추었다.」라고 하였고, 부유하게 되자, 「이만하면 충분히 훌륭하다.」 하였다.’[子謂衛公子荊 善居室 始有曰 苟合矣 少有曰 苟完矣 富有曰 苟美矣]”라고 하였다. 즉, 공자는 맹목적으로 부귀를 추구하지 않고 항상 현재에 만족하며 겸허한 태도를 지닌 공자 형을 칭찬한 것이다.
구합일광[九合一匡] 관중(管仲)이 제환공을 도와서 중국의 제후들을 9번 회합하게 하여서 천하를 안정시켰다. 일(一)이라는 뜻은 크게란 말과 같다.
구합제후 일광천하[九合諸侯 一匡天下]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환공(桓公)이 제후(諸侯)들을 규합하되, 병거(兵車: 무력)를 쓰지 않은 것은 관중(管仲)의 힘이었다.[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라는 내용과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霸者)가 되게 하여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았다.[管仲相桓公 霸諸侯 一匡天下]”라고 하였다.
구합제후[九合諸侯] 구합(九合)은 ‘구합’으로 읽어 ‘아홉 번 회합하다’라고 풀이하기도 하고, ‘규합’으로 읽어 ‘감독하여 회합하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아홉 번 회합하였다고 말한 것은 사기(史記)에 “군용(軍用) 수레로 모인 것이 세 번이고 승용(乘用) 수레로 모인 것이 여섯 번이다.”라고 하였다. 九(규)는 춘추전(春秋傳)에 糾(규)로 썼는데 감독한다는 뜻으로 고자(古字)에 통용하였다.
구합제후[九合諸侯] 아홉 차례 회맹(會盟)함. 또는 제후(諸侯)를 결합(結合)함.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제 환공(齊桓公)이 제후(諸侯)들을 규합하되 병거(兵車)를 쓰지 않은 것은 관중(管仲)의 힘이었다.[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라고 보이는데, 구합(九合)은 아홉 번 제후들을 모은 것으로 보기도 하고, 九(구)를 糾(규)와 통용하는 것으로 보아 규합(糾合)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주자(朱子)는 규합(糾合)으로 풀이하였다.
구합제후일광천하[九合諸侯一匡天下] 논어(論語) 헌문(憲問) 17장과 18장 두 곳을 합친 것이다. 17장에서는 자로가 “환공(桓公)이 공자(公子) 규(糾)를 죽이자 소홀(召忽)은 죽고 관중(管仲)은 죽지 않았으니, 관중은 인(仁)하지 못하군요.” 하자, 공자가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되 병거(兵車)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 하였고, 18장에서는 자공(子貢)이 “관중은 인자(仁者)가 아닐 것입니다. 그가 모시던 공자 규를 환공이 죽였는데도 죽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환공을 도왔으니 말입니다.” 하자, 공자가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霸者)가 되도록 하여 천하를 한번 바로잡았으니,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은택을 받고 있다. 관중이 없었으면 우리는 피발좌임(被髮左袵)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필부필부(匹夫匹夫)가 작은 신의를 위해 스스로 구렁에서 목을 매어 자결해도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과 같으리오.” 하였다.
구합취용[苟合取容] 아부(阿附)하여 남의 환심(歡心)을 사려고 힘씀. 구차한 변명으로 제 몸 지키기에 급급한 지식인.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사람, 염치가 없는 과염선치(寡廉鮮恥)하는 사람과 함께 사마천의 주된 비판대상자이다.
–